역사의 흐름·패턴으로 미래사회 예견
편견 개입 가능‥비판적 수용자세 필요

미래학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40년이지만, 미래에 대한 예언이나 예측은 그 훨씬 전부터 존재해왔다. 특히, 오랜 옛날에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점성술과 사주에 의지했지만 산업 혁명이 일어난 후, 과학의 발달과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점차 현재 미래학과 비슷한 미래 예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온 예언가나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현대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예언가를 꼽으라면 16세기에 활동한 노스트라다무스가 있을 것이다. 당시에 노스트라다무스는 자신의 사망일과 왕비의 수행원이었던 소년에게 프랑스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수행원 소년은 앙리 드 나바르로, 후에 프랑스 왕인 앙리 4세가 된다.


옛 시대의 미래 예측 중 현대에도 전해 내려오는 예언 중 하나가 바로 종말론이다. 종교의 힘이 막강하던 과거에는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2007년에도 우간다에서 종말론을 믿는 신도들이 교회에 불을 질러 600여명이 집단 자살을 하는 등 그 파장이 컸었다. 이경구(인문대·사학)교수는 "예언과 미래학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다른 영역"이라며 "예언은 특정 종교의 이익과 몽상에서 시작됐지만, 미래와 미래예측은 현대사회에서 미래사회로 변화하는 조짐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의 미래 예측은 현대와 가까워질수록 국가가 시장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어떤 사회가 이상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에 대한 예측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두 예측 모두 경제학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해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미래 예측이 결국 미래사회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 달리 실제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해 아무리 획기적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예측도 틀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예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에 의해 수정됐고,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러시아에서 레닌이 일으키지만 결국 1인 독재체제로 변질됐다. 


현대 미래학자 중에서는 엘빈 토플러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엘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인 『제 3의 물결』에서 앞으로 사회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질 것임을 제시했다. 엘빈 토플러 이외에도 과학예술아카데미의 다니엘 벨도 정보 및 과학에 기본을 둔 이론적 지식의 의존성이 높아질 것임을 시사했다. 이 교수는 "현대 미래학자들의 이 같은 예측들은 역사의 흐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읽음으로써 앞으로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 미래학의 중요 기능"이라고 덧붙였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과거에서부터 다양한 학자, 국가 기관 등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나, 미래 전망은 학자의 오류와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아담 스미스의 경제 예측이 빗나갔듯이 미래 전망이 잘못된 판단이나 예상하지 못했던 요인에 의해 잘못 제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미래 전망을 무조건 믿고 따르기보다 객관적인 검증과 비판을 통해 수용하려는 자세를 항상 갖추도록 해야 한다.
고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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