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국무회의…작은 정부 표방해 의결

한 가지 예를 들자. 지난해 '미국 광우병 쇠고기수입 반대 촛불시위'때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해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시정권고 조치를 내려 다양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자유롭게 담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인권위는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공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공적 장치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작은 정부를 위해 '인권위 조직을 21% 축소하겠다'는 법안을 의결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인귄위는 지난 2001년 11월 25일 '국회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개인이 가지는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인권위법을 토대로 출범했다. 이후 인권위는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등에 대한 민원을 접수․조사하고, 국내·외 인권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홍보 활동도 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으로 지난 2001년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의견을 표명했고, 지난 2003년에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행위를 시정 권고해 법안으로 통과되는 성과를 얻었다. 또한 호주제 위헌의견 및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등 각종 인권침해에 대한 조치로 권고수용률이 90%에 이르는 등 인권위의 역할이 나날이 성장해 가고 있다.

이 같은 인권위의 사회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인권위의 기구와 인력을 21%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전부 개정령'을 지난 26일 안건으로 상정하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를 제기하고 직제개정령의 효력을 임시적으로 정지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상황이지만, 결과를 장담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위 축소 방침에 대한 반대 움직임도 뚜렷하다. 지난달 27일 정부의 인권위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전국의 법학교수 250여명이 모여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수호를 위한 법학교수모임' 창립총회를 연 것. 이날 모임에서는 정부의 인권위 무력화 시도 저지와 함께 독립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결의해 인권위에 힘을 실어줬다. 인권위에서 인권연구팀장으로 활동했던 우리학교 정영선(법전원·법학) 교수는 "인권위는 삼권으로부터 분리된 독립 국가기구"라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권위 조직 축소는 단순히 인권위라는 기구가 아닌 우리 사회의 인권 축소를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정부의 인권위 축소 결정은 작은 정부를 표방하기에는 무리한 결정이라는 여론이 높다. 오히려 인권위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판단 없이, 무조건적인 조직 축소는 정치적 폭력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건수만 6천700건으로 처음 문을 연 2001년의 2.3배이며 상담민원은 10배가 늘어나 3만 건에 이르러 기구를 확대해도 모자랄 상태이다. 또한 인권위의 전체 구성원 208명에서 퇴출되는 44명은 전문성과 인권 감수성이 있는 전문 인력을 쫓아내는 격이라는 비판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인권위 축소를 향한 열망(?)은 지난해 1월에 열린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독립기구인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하려는 시도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바람은 시민사회 각계와 국제사회의 반대로 무위에 그치게 되고, 이후 지난해 촛불집회로 인한 정부의 과잉진압에 인권위가 권고조치를 내리면서 정부의 눈엣가시가 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통설이다. 이와 같이 정부의 인권위 조직 축소법안은 인권위의 활동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인권위가 부의장국으로 있는 세계 120개국 국가인권기구 모임인 국제인권기구 ICC에서 오는 2010년 의장국으로 합의 추대가 확실시됐었는데, 이번 인권위 축소 방침에 의해 우리나라 인권위의 위상은 크게 떨어졌다. 이는 ICC 보고서에서 지난 2004년 국가인권기구 A등급을 받았던 인권위를 등급재심사 및 등급 강등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인권위는 중국과 이라크 등이 모범사례고 보고 있으며, 세계 각지의 인권교육을 담당해 오고 있다"며 "정부의 편향된 인식과 자세로 국제적으로 비난받게 될 상황까지 왔다"고 꼬집었다.

인권위는 출범 이후 정부와 계속적인 마찰을 빚었다.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초기에는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정부에 반대서한을 제출하고 정부와 대립구도를 형성했었다. 정권 초기, 미국의 압박이 가해졌던 시점에서 인권위와 대립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러한 일은 인권위의 고유 업무다"라고 하면서 인권위의 활동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현 정부는 작은 정부라는 말로 포장해 인권위를 축소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기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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