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눌와, 2005

사람들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일상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 나는 생각한다. 나를 에워싼 지긋지긋한 그 일상 속을 조금 다르게, 특별하게 바라본다면 모든 날이 언제나 새롭지 않을까. 그것이 여행 아닐까.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하고 늘 당연하지만, 들여다보면 제각기의 자리에서 매순간 저마다의 빛을 내고 있을 것들.
『김선우의 사물들』은 시인 김선우가 3년 4개월 동안 월간지에 연재한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숟가락, 못, 바늘, 걸레, 쓰레기통, 사진기 …
우리 삶 속의 사물들에게 귀 기울이고 오래도록 관찰하며 그들의 존재를 깊숙이 인터뷰한 김선우는, 책의 여는 말에서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찾아, 건반을 튕기듯. 너무 빠르지 않게, 하루에 하나의 사물씩만' 읽기를 권한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이나 화장실 변기 안에서도 페이지와 순서에 강요당하지 않고 마음 가는 사물을 골라 부담 없이 읽어내려 갈 수 있겠다.
마음 가는 대로 책을 펼치면, 시인의 고운 낱말들이 여기저기서 찰랑댄다. 촛불은 시인에게서 '어둠이 지닌 숨구멍 속에 고요하게 웅크리고 앉아 자기의 호흡에 몰두하는 한 마리 짐승'이 되고, 손톱은 '고운 한지가 발라진 둥그스름한 열 개의 창문'이 되고, 수의는 '어둠과 빛 사이의 찬란한 배내옷'이 된다. 시인의 맑은 눈과 손을 거쳐 종전의 관념을 녹이며 다가오는 사물들에게 나는 매혹된다.
아름다운 언어로 가득 찬 스무 편의 글 중에서도 나는 ‘의자’를 가장 좋아한다. ‘일몰의 대평원으로 초대받는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는가’ 하는 질문에, 작가는 ‘의자’라고 답한다. 왜 하필 의자일까. ‘의자의 받침면과 네 개의 다리 사이에 벌어져 있는 비밀스러운 빈 공간은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몽상의 공간이어서 결코 심심하지 않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을 스케치 한 후 의자만 지워낸다면 그 모습은 춤을 추는 것 같은 관능미와 유쾌함을 주기 때문에. 의자는 직립에 성공한 문명의 흔적인 동시에, 직립 이전의 낮은 자세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무의식을 담고 있는 몽환의 요람이기 때문에’ 라고 김선우가 말한다.
김선우가 부럽다. 우리가 하루에 몇 십번 마주치면서도 단 한 번도 그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았던 사물에게서, 이렇게 신선한 맥을 짚어내는 김선우의 나날은 얼마나 빛날까. 김선우의 눈으로 본 세상은 매일이 여행 아닐까.
그리고 미안하다. 나는 한 번이라도 내 무게를 받들고 있는 의자를 고마워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가만히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연필꽂이와 달력과 액자와 귀이개가 새삼스럽다. 볕이 좋은 오후에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여기 늘 있어줘서 고맙다’ 라는 눈짓을 건네고 싶다.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는 『김선우의 사물들』을 책장에서 꺼내겠다. 가볍게 들어 가볍게 읽는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주위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사하게, 편안하게, 그리고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먼 곳의 꽃내 섞인 바람이 너울 불어와 나를 일상의 여행지 속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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