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돈으로 살 수 있다. 본인에게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돈으로 교환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일매일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사는 것처럼, 남자들도 여자를 ‘구매’ 한다. 목이 말라 수퍼에 가서 음료수를 사는 것, 배가 고파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는 대가로 금전을 지불하는 것처럼 남자가 돈을 주고 여성의 성적 서비스를 제공받는 행위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이라 여긴다.


돈으로 여성의 ‘성’을 구매하는 것을 우리 사회에서는 불법 행위로 간주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허용’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므로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남자들끼리 있는 자리에서는 성을 구매한 경험 후기나 어느 업소의 서비스가 좋은지 정보를 교환하는 등 거리낌없이 성매매를 화젯거리로 삼는다. 이처럼 성을 구매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일상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가치판단이나 적어도 불법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반성,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사회의 규범을 어기는 것이라 잘 알면서도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는 것, 인터넷으로 음악이나 영화 파일을 불법으로 다운로드받는 것처럼 남성들에게 성 구매 행위는 마찬가지로 다가간다. 그래서 간혹 단속에 걸리면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재수 없게 걸렸다’라며 당당하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남자들은 재수 없게 걸린 그 남자를 공감하고 위로해준다.


얼마 전 강희락 경찰청장이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성매매 관련 문제에 대해 ‘재수 없으면 걸린다’, ‘성매매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는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는 성을 구매하는 것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성적 거래 대상이 되는 여성에게는 ‘돈을 쉽게 벌려고 몸을 함부로 놀리는 헤픈 여자’로 도덕적 잣대를 들어 비난하고, ‘창녀’라는 말로 낙인찍는다. 반면 남성들은 성을 구매한 경험이 많을수록 자랑거리가 되고, 자원이 된다. 성 구매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대함만으로도 성차별적이다. 성매매 여성들을 낙인찍고 비난하는 잘못된 통념도 결국에는 남성들이 성을 구매한 범죄 행위와 심리적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어로 사용된다.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문제이고 여성인권을 침해하는 문제이다. 남성들은 성욕을 식욕과 같은 급에 놓음으로써,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성적인 침해나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정말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인가? 남성이 성을 구매하는 것은 권리인가? 성을 구매하지 않은 남성은 진정한 남성이 아닌가.


그 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 내 안에 질문을 던져보자.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최장미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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