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때쯤이었나, 10년 동안 한 동네에 살았던 친구 녀석이 군 휴가라며 놀러온 적이 있었다. 근 3년 간 보지 못한 오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난다는 생각에 나는 매우 들떠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오자마자 뜬금 없이 연극이 보고 싶단다. 우리학교 주위에 어디 소극장이라도 있었던가. 소리문화의전당은 교통편이 불편해서, 그냥 피시방이나 가자고 했다. 친구는 딱히 미련은 없었는지 내 의견에 동의해줬다. 그 날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다음날이 되자 자존심이 팍 상해버렸다. 친구 녀석이 “어떻게 대학로에 소극장 하나 없냐”고 톡 쏘아붙이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우리학교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나는 그 다음부터는 대학로에 어떤 건물들이 있는지 눈여겨보게 됐다.
자세히 들여다 본 우리학교 대학로는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공간적 측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문화공간의 종류가 너무나도 적었다. 술집, 노래방, PC방, 당구장, 책방, 카페. 우리학교 대학로에서 앞에 나열한 것들을 벗어나는 문화공간은 거의 없다. 가까운 객사와 롯데백화점, 소리문화의전당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흔한 영화 한편, 연극 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우리학교를 한번 되돌아보자. 공연 동아리에서 활용할 수 있는 노천극장과 각종 동아리들이 있는 동아리 전용관, 연극무대가 설치돼 있는 합동강당, 갤러리와 무대설비가 돼 있는 삼성문화회관 등 우리학교 내에서도 많은 문화 활동이 가능하다. 문제는 전혀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천극장은 공연 동아리들이 연습을 하려고 해도 다른 학생들에게 소음을 이유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동아리 전용관은 매우 한정된 동아리만을 수용할 수 있다. 삼성문화회관도 진행되는 행사와 공연을 살펴보면 대학생들이 즐길만한 문화보다 특정 기관(단체)의 행사나 연주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을 ‘기수역’이라고 한다. 기수역은 강물과 바닷물이 뒤섞이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어종이 서식하며, 각종 희귀어종의 치어를 키우는 인큐베이터의 역할도 한다. 전주는 어떤 곳인가. 전국의 웬만한 곳은 2 3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역사적 전통과 현대적인 문화가 교류하고 있는 곳이다. 즉 전주는 전국의 어떤 문화든 수용하고 유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곳이며, 전통과 현대를 뛰어넘는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문화의 기수역이라는 것이다. 우리학교는 바로 이곳의 지역 거점대학인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서, 우리대학은 지역과 대학의 문화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대학생이 즐길 수 있으면서 자기 계발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참으로 아쉽다. 문화산업시대를 살아가고 선도해 가야 할 우리에게 필수불가결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문화부장| 고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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