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노동절 대회 집회 불허 통보 받아
게릴라식 행사 불가피…정부 비판 한 목소리
4만 여명 운집…전경과 대치하다 일부 연행

1886년 5월 1일 미국, 하루 16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며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1889년 세계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한 미국 노동자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정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외침과 저항의 정신은 119년이 흐르는 동안 한반도 땅 곳곳의 노동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지난 1일 ‘제 119년 세계 노동절’ 맞이해 서울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범국민대회’가 진행됐다.

“명박 정권, 퇴진하라!”노동절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구호가 서울 한복판에서 울러 퍼졌다. 이유는 지난해‘촛불시위’에도 불구하고 독불장군 식으로 정책을 밀고 나가는 이명박 정권에 맞서 노동절 대회를 온 국민이 참여하는 ‘범국민대회’로 치렀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과 시민단체들은 민노총 주최로 열리던 기존의 노동절 대회와는 달리 올해는 50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합세해 노동자는 물론 농민, 학생, 서민, 빈민 등 각계각층과 함께 하는 노동절 대회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시민 모두가 참여 가능한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이 ‘불허’방침을 통보함으로써 시민들은 여의도 문화광장으로 장소를 옮겨야 했다. 민노총 이승철 대변인은 “노동절 대회는 매년 도심에서 이뤄졌었는데, 경찰이 도심 노동절 대회를 불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경찰은 심지어 ‘모든 불법집회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밝혔다. 덧붙여 이 대변인은 “우리나라 헌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천부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며 “불법 시위를 양산하는 것은 정부와 경찰 스스로 만든 고무줄 같은 불법 잣대”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열린 범국민대회는 ‘세계 노동절 기념, 촛불정신 계승, 민생 살리기, 민주주의 살리기, MB정권 심판’의 기치를 내걸고 오후 3시부터 시작됐다.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 정치인, 대학생, 노동자 등 4만 여명이 참가한 자리에서는 전국학생행진 새내기 율동, 국립오페라단 조합원 합창, 패러디성악공연 ‘잡리스’의 공연 등 주로 문화공연이 진행됐다. 이날 범국민대회 조직위원회는 경부운하 강행 반대, 비정규직법 개악 중단, 반값 등록금 공약 즉각 실시, 용산참사 해결 등 10대 요구안도 발표했다. 또 행사장 주변에는 각 노조원들이 전시해 놓은 팜플릿을 통해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있었으며, 비정규직 철폐, 이주 노동자 인권 등의 서명 운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 1일 노동절을 맞아 진행된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2시간 후 행사가 모두 끝나고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을 필두로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독재정권타도”를 외치며 신길역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가족과 함께 이번 대회에 참여한 박승일(39·인천시 부평구)씨는 “날도 좋고 아이들에게 보고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아 함께 나왔다”며 “이 자리를 통해 재벌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서민들의 설자리를 없애는 이명박 정권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집회 참가자들은 지하철을 이용해 종로와 서울 시청 광장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으나 경찰과 전경이 서울 시청역을 봉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버스를 이용해 다시 시위대와 합류하는 등 집회 참가자들은 산발적으로 집회를 벌였다.

특히 대학생 참가자들은 지하철 역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약 1시간을 전경과 대치해야 했다. 전경들이 모든 출구를 막고 지하철은 시청에서 정차하지도 않은 채 그냥 지나쳐 시민들도 불편을 겪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대부분의 시민들은 불편하지만 대학생들을 응원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김강수(55·서울시 강서구) 씨는 “대학생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8시쯤 명동 밀리오레 정문에 모여 구호를 외치며 2일에 있을 ‘촛불 시위 1주년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이 자리에서 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평화적인 집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경들은 참가자들을 연행해 갔다”며 “연행된 자들이 빨리 풀려나려면 2일에 있을 집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300여명의 남은 시위자들은 거리 시위를 막는 경찰과 밤늦게까지 대치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

미국에서부터 시작한 노동절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받고 노동자들의 결집을 도모하는 거대한 축제로 승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9년 ‘한국 전쟁 이후 단절됐던 노동절의 의미와 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하며,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일이며, 축제의 장이기도 한 노동절에 이명박 정부는 명분 없는 불허 방침으로 민주화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특히 올해 노동절은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고,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물결로 이어지면서 노동절 역사상 유례 없는 탄압으로 기록되고 있다.
정미진 기자
jmj@chon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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