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다'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서 사라지고 푸드칩과 셀리마슘이 음식을 대신하는 요즘,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난 가끔 설명하기 모호한 단어 때문에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된다. 아까부터 멀뚱히 창밖을 바라보던 엉뚱한 상상력을 소유한 혜진이는 나를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전깃줄 위에 참새는 먹이가 없으면 어떻게 하죠?"
"참새는 먹이가 없으면 먹질 않아요." 라고 난 지극히 1차원적인 답변을 주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 그러는데 인간도 예전엔 먹질 않았던 시절이 있었데요."
"네, 맞아요. 불과 이십 여년 전만 해도 인간도 먹질 않았어요."
"먹질 않으면 어떻게 되죠?"
"굶게되는 거죠."
"선생님 굶는다는 게 무슨 말이죠?"
"그게... 조금 설명하기 복잡한데..."
그러고 보니 굶는다는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나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보면 굶는다는 것은 뭔가 슬펐던 것 같다.


슬픔과 미각이 어떠한 연관성이 있나? 모르겠다. 단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슬펐던 걸까?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모든 걸 생각하는 단 3초간의 시간이 내겐 지나친 사치라는 것이다.
곧 점심시간이 되고 아이들은 셀리마슘을 꺼내든다. 나 역시 셀리마슘을 꺼내든다. 어떻게 보면 솜사탕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안개 같기도 한 이 물질이 인간의 주식이 된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리모콘을 자기 혀에 대며 오늘 먹을 '맛'에 대하여 선택한다. 나도 리모콘을 나의 혀에 대며 오늘 먹을 '맛'에 대하여 선택한다.


오늘은 어떤 맛을 먹을까? 친절하게도 리모콘에 있는 액정에 오늘의 추천음식이 뜬다. 리모콘엔 나의 체형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저장되어 있어 날마다 나의 생체정보에 적합한 음식을 추천해준다.


사실 리모콘이 어제 추천한 김치찌개 맛은 별로였다. 뭐랄까... 매운맛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요사이 신맛이 점점 조절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나의 혀에 내장된 푸드칩을 업그레이드 할 때가 된 것 같다. TV에서 약 2만 가지의 맛이 내장된 신형 푸드칩 광고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나의 1년치 연봉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부유한 부모를 둔 아이는 나보다 더 좋은 푸드칩을 보유한다. 그런 아이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 맛을 먹어봤다고 자랑을 한다. 반면 가난한 아이들은 밥맛과 몇 개의 반찬 맛을 느낄 수 있는 기본 설정만 되어있는 푸드칩을 정부에서 제공받는다.


최초 푸드칩을 발견한 과학자는 인간의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될 것이라 호언장담했고, 그 예측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아프리카 빈민가의 아이들에게도 선진국가에서 사용하다 쓸모가 없어진 푸드칩을 공급받게 되었다. 그 결과 '굶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2100년 역사적으로 세계 언어 사전에서 '굶다'라는 말을 삭제하는 호화로운 기념회를 가졌다. 푸드칩과 셀리마슘의 발견으로 농업과 축산업 등의 생산업은 점점 축소되었고 실제 생산된 쌀과 고기는 세계 0.001%내의 초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럴수록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푸드칩 개발에 뛰어들었다.
내 혀에 내장된 푸드칩이 어느 회사가 만든 푸드칩이지? 언제 업그레이드를 했는지 헷갈린다.


어렸을 적 큰마음을 먹고 어머니께서 해주신 제육볶음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아니 내가 고기를 씹은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었나?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고기를 씹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오늘은 순두부찌개를 선택했다. 셀리마슘을 흡입한다. 이 맛이 순두부찌개 맛이었던가? 조금 시다. 빨리 업그레이드를 해야겠다. 
유동석┃신방 09년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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