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 연구실은 전북대학교에서 가장 지저분할 것이다. 나는 ‘다음에 필요가 있을 것이다’고 생각을 해서 무엇이든 버리지 않고 연구실에 모아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잡동사니가 쓰레기처럼 여기저기 쌓여있어서 보기 흉할 정도이다. 2, 3년만 쌓여있어도 보기가 흉할 텐데 10, 20년이 되었으니 말해서 무엇하랴! 그래서 나는 버리기로 작정하고 올해부터 실행하였다.

먼저 내 앞으로 우송되어왔던 상자나 대봉투를 버렸다. 그동안 말짱한 대봉투를 버리기 아까워 연구실 한편에 두었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사용해도 대봉투는 계속 쌓였다. 그동안 내게 전달되었던 각종 학회의 안내장도 버렸다. 누가 언제 무엇을 발표했고 그 안내장의 편집은 어떠했는지 참고하려고 했었다. 점점 안내장은 정교하고 아름다워졌다. 그러나 그것도 몇 상자가 되어 나는 그것을 버렸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총장 후보들의 소견서며 학생의 리포트도 버렸다. 내게 우송되었던 각종 학회의 학회보도 일부 버렸다.

오려놓은 신문기사도 일부 버렸다. 내가 읽고 싶어서 복사한 복사물도 일부 버렸다. 내가 공부했던 또는 읽고 싶었던 책들도 일부 버렸고 또 버리려고 묶어 놓았다. 버리기가 아까워 내 아이에게 주려고 물어보았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건만 종이의 질이 안 좋고 글자가 세로로 쓰여 있고 한자가 있어서 싫다고 한다. 이런 책들이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이병도의 『율곡의 생애와 사상』, J. S. 밀의 『자유론』.

넝마 같은 헌책 가운덴 김수학의 『지방회계정의』 같은 책도 있다. 이 저자는 충남 도지사를 역임한 청백리이다. 버리려고 묶어 놓은 책 가운데 원본 혹은 복사판 전공 책도 있다. D. 왈도의 『The Administrative State(행정국가론)』, V. 오스트롬의 『The Intellectual Crisis in American Public Administration(미국행정학의 지적 위기)』. 이 책은 행정학을 전공하는 학도는 한번쯤 읽어야 할 책일 것이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책으로, 그 생명이 끝난 책이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도 있다. 버리기 참 아깝지만 이제 버리려고 묶어놓은 책들이다. 누구를 줄까 생각을 해봐도 마땅한 학생이 안 떠오른다.

몇 일전에 데이빗 이스튼의 『정치체제론』을 수강 학생에게 줄까 하여 수업시간에 가져갔다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태도를 보고는 그냥 나왔다. 그 다음 수업시간에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을 가져갔다가 또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읽으면 책이고 버리면 쓰레기이다. 내가 우리 행정학과 학생에게 전공과 관련하여 이것저것을 읽으라고 권하기 어렵다. 읽으려는 학생도 찾기 힘들고 권하기도 힘들다. 이는 우리학교 거의 모든 학과의 공통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차 어떠한 학생이 전북대학교를 이끌 것인가? 지저분한 연구실을 정리하다, 학술서나 전공서적을 곁에 두거나 선호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니 책 한 권도 아껴보고 돌려보던 옛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미치니, 내게는 책을 버리는 일이 더욱더 어려운 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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