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학생이 되길 바랍니다”

아쉬움과 설렘의 전북대학교는 나의 대부분

약 330권 저서 집필…저널리즘 실현의 결과

지나친 겸손은 금물, 근거 있는 자신감 필요

 

수북하게 쌓인 책들에 둘러싸인 누군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생각이 한 장의 종이에 옮겨지더니 그렇게 책이 완성됐다. 시대의 논객, 성실한 글쓰기의 대가라고도 불리며 『한국 현대사 산책』,『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바벨탑 공화국』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 인물. 삶이 글이고 글이 삶인 강준만(사회대·신문방송) 교수를 32년 간 몸담았던 교정을 떠나기 전 어느 겨울 전북대신문이 만나봤다.

전북대학교를 ‘아름다운 공간’이라 묘사하는 강 교수는 오늘도 어김없이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든 채 건물로 들어선다. 매일 도보나 자전거로 오가는 출근길이지만 그는 이 길이 늘 새롭다. 강준만 교수는 “사계절이 아름다운 덕진 공원이 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것은 큰 축복이며, 그곳을 하루 두 차례씩 왕복하며 즐길 수 있는 것은 전주 시민으로서도 큰 영광”이라며 “언젠가 덕진 공원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전북대라는 직장을 축복이라 자랑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라고 대학과 지역에 애정을 보였다.

강준만 교수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33세부터 60대 중반이 되기까지 몸담았던 전북대학교가 자신의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학교에 신문방송학과가 만들어지고 1년 뒤인 1989년부터 전북대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해 이번 해로 32년째 재직하고 있다. 강 교수는 신방과의 초창기부터 함께 한 사람으로서 신방과 학생들에 대한 추억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신방과 학생들은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자신이 속한 전북대학교를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지며, 그 적극성이 훌륭한 결과로 나오는 것을 많이 봤다”라고 말했다.

강준만 교수는 30여 년 간 재직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학생들을 여럿 볼 수 있었고 마주한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생각 또한 바뀌는 경험이 있음을 밝혔다. “내가 꼰대였다. 처음엔 요즘 학생들이 정말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이더라”라고 웃었다. 그는 정보를 접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디지털 시대에, 각자가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있는 학생들의 능력에 감탄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책 중심으로 생각했던 그에게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학생에 대한 인식과 사고가 전환되는 경험이었다. 그는 이제야 학생들을 이해한다며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접하는 학생들이 양극화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분별력을 가지고 접해야 한다”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강준만 교수는 우리학교에 오기까지 중앙일보 수습기자, MBC라디오PD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방황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을 ‘진로선택에 있어 기회주의자’라고 칭했다. 강 교수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 이것저것 해보다 교수의 길로 들어선 경험담을 밝혔다. 그는 “요즘 학생들 중에도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동시에 다른 학생들보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를 찾는 것이 진로를 설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일까?, 이 일에 진심으로 몰두할 수 있나?’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보라고 학생들을 응원했다.

강준만 교수는 “‘평온’이란 비교함으로써 인생의 의미와 보람을 찾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 대부분은 자신을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불행해지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북대학교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행보를 거울삼아 자신만의 길을 마련하되, 지나친 비교를 통해 자기 삶의 주체성을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또한 비교를 통해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감에 있어 우선시 여기는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언론, 역사, 페미니즘, 그리고 정치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약 330여권의 책을 발간했다. 다양한 영역에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으며 종횡무진 활동하는 그를 세상은 ‘시대의 논객’이라 평한다. 강준만 교수는 글로써 사회를 비판하고, 세상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교수라는 직분의 의무이자 특권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교수는 관심과 전공분야에 따라 대통령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글을 쓰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교수란 직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임을 피력했다.

강 교수에게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집필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일환이다. 그가 다양한 영역의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는 “발간은 한 편 한 편 써 놓은 칼럼들을 한 곳에 묶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에게 사회란, 선의의 분업체제가 만들어 놓은 폐해가 드러난 곳이다. 그런 그에게 정치와 경제의 분리, 노동과 교육, 그리고 부동산의 분리는 사회의 모순으로 다가왔다. 이에 그는 “이러한 사회적 모순들을 지적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나의 말과 글이 그 역할이었으면 좋겠다”라며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강준만 교수는 이번 해를 마지막으로 32년의 세월을 지낸 전북대학교를 떠난다. 교수라는 직분을 내려놓고 작가, 글 쓰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강 교수는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에게 ‘교수’는 무엇보다 좋은 직업이었고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려놓아야 하는 것도 많았다. 이에 강 교수는 퇴임 후 지금보다 더욱 제대로 된 책을 써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퇴임 이후의 삶을 위해 단독 서재와 작업실을 마련해 놓았고 그곳에서의 일상은 지금의 일상과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학교를 떠나는 강 교수지만 꾸준한 독서와 글을 통해 앞으로도 독자들과 만날 것을 굳게 다짐한 그였다.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한 젊음의 힘 세대의 역할에 대해 피력했다. 이어 나날이 신기술이 등장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기존 세대들은 젊은 세대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했다. 강 교수는 “기성세대는 지금까지의 수고를 정리하고 압축해 다음 세대에 전수해줄 수 있어야 하고, 젊은 세대는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라며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소망했다.

강 교수는 이와 같은 사회로 변화하기 위해선 건방진 학생들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지나친 겸손을 보이는 모습을 봐왔고 그들은 조금 더 건방져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건방진 학생이 되라는 말은 자신감을 갖춘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자신감은 충분한 근거에서 나온다며 “근거있는 자신감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꾸준히 돌아봐야 하며 노력은 그 과정에서 나온다”라며 학생들에게 응원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는 교수 초임 시절부터 함께했던 학생들에 대한 추억을 얘기했다. 실제 교수 초임 시절 만났던 제자들은 50대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전주에 있으면 제자들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좋은 점”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환하다. 학생들과 함께 늙어간 세월이 놀랍기도 하지만 자주 만날 수 있으니 좋다는 농담을 던지는 그였다. 인생의 반을 전북대학교에서 지내며 32년 세월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며 많은 가르침을 남긴 강준만 교수, 글을 통해 펼칠 그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심동훈 기자 simpson123@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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