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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진실? 정의? 아니면 포기? 상실? 망각?어쩌면 이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상대적이란 말을 붙이는 이유는 어느 것도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절대적인 것이 삶에 존재한다면, 그 삶은 그 절대적인 존재, 또는 가치에 종속된다. 그 가치가 아무리 중요하고 정의롭더라도 종속된 삶은 길이 정해져 있고, 정해진 길은 시기와 상황에 맞는 상대적인 길을 지워버린다. 정해진 길이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게 한다. 약속도 마찬가지다. 약속은 약속할 상대가 필요하다. 상
문화
전북대신문
2024.04.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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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삶과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은 항상 괴리가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 괴리를 느끼는 건 아니다. 괴리가 크면 클수록 괴리가 없다고 합리화하고, 또는 그것을 감추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괴리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크다는 걸 깨닫는다. 모든 것을 삼키는 함정이다. 항상 자신 옆에 그 큰 틈이 존재했지만, 보지 않은 척했을 뿐이다. 그러니, 생각보다 큰 함정이 아니라, 생각하지 못했던 함정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두 친구 클라이브와 버넌은 우정을 걸고 약속한다. 상대방이 인간의 품위를 잃고 살
문화
전북대신문
2024.03.1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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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과 가치는 다르다.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답이 가치는 될 수 있어도, 그 올바른 답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올바른 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선택한 올바른 답이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이 찾은 답은 나와 타 인과의 관계를 이루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서로에게 납득할 만한 답이란 믿음의 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런데 함께 찾은 답이 흔들릴 때가 있다. 서로 함께 만들어가던 답이 어느 순간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답은커녕 서로의 삶을 옥죄는 억압, 가식, 또
문화
전북대신문
2024.03.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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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하는 순간이 있다. 잊어버릴 수도 있고, 잊었더라도 그다음 순간과 순간 이 쌓여 결국 사랑에 빠지는 인생이 있다. 순간과 인생. 그건 문학의 오래된 주제이 고, 그토록 찾는 문학의 진실이기도 하다.어쩌면 나도 그렇다. 되돌아보면 많은 사랑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 내 인생이 되었다. 나는 많은 부분 내가 읽은 문학에 빚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읽은 문학의 문장이 나를 만들었다.내 안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은 문학 작품의 파편들로 이뤄졌고, 그 파편들이 퍼즐처럼 이어지고 겹치고 쌓
문화
전북대신문
2023.12.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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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이기보다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에 속한다. 전통적인 예술 감상법에 익숙한 우리는 미술관에 가서 차단펜스 너머에서 예술품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으로 예술을 소비한다.그런 순간에도 가끔 섬광처럼 예술 작품이 내 것이 되는 순간이 있다. 예술 작품을 직접 만들어서가 아니다. 예술 작품이 대단히 뛰어나서도 아니다. 예술을 받아들이는 내가 그 예술품에 대해 지식이 많아서도 아니다. 어쩌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나와 예술 작품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고, 그 대화가 너무 재미있고 즐겁고 유익할 때가 있
문화
전북대신문
2023.11.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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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이야기를 담아내더라도 새로운 글 쓰기가 필요할 때가 있고, 그 새로운 글쓰기는 새로운 형식에 담긴다. 담긴 이야기는 형식에 의해 새롭게 변한다.조르주 페렉은 그런 글쓰기를 하는 작가다. 그가 쓴 『사물들』도 그런 새로운 형식에 내용을 담기 위한 작업이다. 사회학적 글쓰기라고 명명되지만, 그건 이번 글쓰기에 한 정된다. 그는 다음 글쓰기는 다른 형식으로 글을 쓴다. 자서전적 글쓰기, 로마네스크적 글쓰기, 유희적 글쓰기, 작가는 끝없이 형식을 바꿔가면서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냈다.작가가 『사물들』을 사회학적 글쓰기에 이야기
문화
전북대신문
2023.11.1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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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가라고 칭송받는 작가가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이런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소설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닮았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 작가는 질문한 기자에게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읽었다면, 어떻게 레이먼드 카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나요?많은 작가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똑같이 따라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든, 문체든, 형식이든, 아니면 글에서 풍기는 아우라든, 많은 작가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탐독하고 그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
문화
전북대신문
2023.10.1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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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평론과 문학작품에서, 심지어 영화에서도 예술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의 도구로 묘사된다. 예술가에게는 구원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마음이 아프고 슬플 때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린다. 가끔은 처방책이라고 치료약으로 문학을 권하기도 한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예술을 하는 자체가 어떤 위안이 된다.하지만 예술은 마냥 긍정적인 영향만 주지는 않는다. 예술가는 스스로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갈구하고 욕망하는 창조 행위는 너무 강렬한 에너지라서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적당히! 이건 예술에
문화
전북대신문
2023.09.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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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오고 있지만 매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만큼 매혹이 강렬하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 그런 매혹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죽음을 각오하는 여러 매혹을 만난다. 그것이 애국심일 수도 있고, 종교적 신념, 또는 광기일 수도 있고, 사랑에 빠진 여린 청년일 수도 있다. 합리적인 이성을 마비시키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도 분명 어떤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인 이성이 아닐 뿐이지, 매혹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성도 작동한다.매혹과 이성은 절대로 반대가 아니다
문화
전북대신문
2023.09.0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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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비교적 잘 표현하는 직업군이 작가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그런데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독특한 생각을 가진 작가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 독특함을 누구나 다하는 표현으로 한다면 잘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해야 하죠. 이건 모든 작가의 숙명입니다. 작가라는 칭호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어느 정도 형성한 사람을 뜻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문화
전북대신문
2023.06.0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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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어느 편이 정의롭냐, 또는 어느 편이 승리했냐는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중요하다와 중요하지 않다로 나뉜 두 질문이야말로 가장 헛됩니다. 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 평화가 가장 중요할 뿐입니다. 누군가가 누구를 죽이는 행위 자체는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상태이니까요.그 모든 것을 고발하는 소설이 전쟁의 슬픔입니다.이 소설은 베트남문인회 최고상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번역돼 바오 닌을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 전쟁의 군인이 살인마가 돼가는 과정
문화
전북대신문
2023.05.2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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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 영화광이라면 이 형제를 모를 사람이 없습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이 시대의 영화 거장이죠.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쓸쓸하고 희미하면서도 리얼리즘을 추구하고 있어 강렬합니다. 선명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절망적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희망을 이야기하죠. 그 희망이 너무 갑갑해서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 때로는 그 희망이 너무 슬퍼서 오히려 희망을 품는 주인공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죠. 실제로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지만 우리는 외면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문화
전북대신문
2023.05.0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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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극치, 완벽한 미의 대상. 또는, 완벽해야만 하는 대상.과연 그런 존재가 있을까요? 사실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질문은 어리석습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이런 질문 자체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는 그런 존재를 내가 믿을 수 있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믿는다면 똑같이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 ‘믿는다를 선택했다’, ‘믿지 못한다를 선택했다’로 선택 영역으로 변하죠. 강요에 의한 선택일 수도 있고, 스스로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
문화
전북대신문
2023.04.1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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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도스토옙스키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대문호의 글 을 이해하는 열쇠라면, 꼭 읽어볼 만 하겠죠. 하지만 문을 여는 열쇠의 굴곡과 홈은 복잡합니다. 쉽게 복사할 수 있다면 열쇠는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복잡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층적이다. 그래서 여러 층위로 해석 가능하다고요.사람의 내면 또한 그렇습니다. 아무리 단순한 인간이라고 해도 그 단순함을 가지게 된 이유를 깊게 살펴보면, 단순함은 그냥 단순함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때문
문화
전북대신문
2023.04.0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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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파티’는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안락한 곳에서 하는 파티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비밀스럽다. 그리고 모든 비밀은 언젠가는 드러나고, 항상 제어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에서 튀어나온다.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삶의 연출가이고 근본적으로는 누군가, 어떤 존재, 또는 어떤 구조의 연출에 놀아나는 배우다.누군가의 집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욕망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꾸몄는지, 어떤 물건으로 장식했는지, 그리고 어떤 밝기, 어떤 동선으로 배치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문화
전북대신문
2022.12.07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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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문학 장르로 수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수필은 짧습니다. 그 짧은 글 안에 소박하지만 중요한 삶의 성찰이 녹아 있습니다.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면은 단편소설과 비슷하지만, 수필은 상상으로 쓴 글이 아니란 경험을 토대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수필이 경험을 토대로 쓰는 글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힘듭니다. 경험은 분명하지만 경험 그대로 기술하지 않습니다. 평소 작가의 사상과 삶의 기준 등이 글에 함께 녹아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주장하는 글이라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저는 수
문화
전북대신문
2022.11.2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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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자기 경험을 쓰는 문학 장르다. 소설이나 시처럼 문학적인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는 글이 아니다. 소설이나 시는 자기 삶과 동떨어진 어떤 인물과 세계관을 창조한다. 그러니까 작가와 글이 따로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작가와 글을 따로 떨어트려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이렇듯 문학적 상상력이란 자신과 글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이 있어도 안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삶과 동떨어져 있어도 안 되고, 개인적인 삶에 함몰돼서도 안 된다는 말이 된다. 그 관계를 비틀고
문화
전북대신문
2022.11.1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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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사건, 또는 한 가지 이미지를 보더라도 사람들 모두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는 흔하다. 아무리 명백한 일이라 해도 아주 조금씩 해석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과연 객관적인 단 하나의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답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이러한 확신 또한 하나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확신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해석이기에,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논리적이고, 권위 있고, 자신에게 이로운 해석을 찾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것에 의지한다.
문화
전북대신문
2022.11.0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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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전쟁이 끝난 후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 프레드는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좁은 단칸방에서 사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옵니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에 프레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희망을 생각했습니다.희망은 무엇일까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프레드의 발걸음을 희망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건 희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먼저 저에게 질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희망을 봤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희망을 봤을까요? 그 희망은 삶이 행복하게 변한다든지, 없던
문화
전북대신문
2022.10.1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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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작품은 미술이 아닐까요? 이 질문의 전제는 미술이라고 알려진 작품을 미술이 아니라고 말해야 성립됩니다. 원래 미술이 아닌 것을 굳이 미술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면 미술이라고 알려진 작품을 미술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을 통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앞의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변주됩니다. 작품의 어떤 부분이 바뀌어서 과거에는 미술이 아니었던 것이 미술 작품이 된 것일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작품에서 변한 부분은 없습니다. 변했다고 하면 세월이 흘러 변색이 되거나 낡게 변한 것
문화
전북대신문
2022.09.27 2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