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스토너』,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

문학을 사랑하는 순간이 있다. 잊어버릴 수도 있고, 잊었더라도 그다음 순간과 순간 이 쌓여 결국 사랑에 빠지는 인생이 있다. 순간과 인생. 그건 문학의 오래된 주제이 고, 그토록 찾는 문학의 진실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도 그렇다. 되돌아보면 많은 사랑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 내 인생이 되었다. 나는 많은 부분 내가 읽은 문학에 빚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읽은 문학의 문장이 나를 만들었다.
내 안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은 문학 작품의 파편들로 이뤄졌고, 그 파편들이 퍼즐처럼 이어지고 겹치고 쌓여서 나라는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니, 문학과의 첫사랑을 고백하는 이 책을 읽고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스토너』의 이 구절을 읽고 과거의 자신을 떠올릴 것 이다.
아, 그래 나도 그랬지.
마치 첫사랑 영화를 보고 첫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가슴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문 장이다.

‘슬론의 시선이 윌리엄 스토너에게 되돌아왔다.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 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 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눈을 깜빡이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뺨에 내려앉았다. 햇빛이 뺨의 솜털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책상을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그 갈색 피부 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 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커니즘에 감탄했 다.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 속에서 섬세하게 박동하며 손끝에서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지는 듯했다.’ -20쪽

바로 이 장면이다. 소설의 이 장면을 읽은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나를 과거로 다시 끌고 간다. 그것도 문학을 사랑하게 된 첫 장면으로. 그래서 독서 모임을 위해 억지로 책을 읽었든, 아니면 의무적으로 유명 작가라고 해서 읽었든, 그 모든 작품이 환한 빛으로 다시 내게 쏟아진다.
맞다. 나는 자주 잊어버렸다. 내가 읽은 책들이 얼마나 환하고 빛나는지를.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그 환함을 얼마나 깎아내렸던가. 당신이 읽고 있는 문학이 당신에게 묻는다.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당신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잊었다면 다시 상기해 대답해야 한다. 『스토너』 소설을 쓴 작가 존 윌리엄스가 당신에게 묻는다.

강성훈│독립서점 카프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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