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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는 교지의 일종으로 국왕이 과거 합격자에게 내려준 합격증서이다. 이 문서는 연산군 4년(1498년)에 유학 장기건(張紀乾)이 생원시 (生員試)에 합격해 받은 백패로 당시 장기건의 성적은 3등 27인(100명 중 57등)이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관료를 선발하는 대과, 생원과 진사를 선발하는 소과로 구분된다. 소과는 초시·복시 2단계를 거쳐 각각 1인 5인, 2등 25인, 3등 70인으로 100인이 선발됐다. 소과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해 수학하면서 대과에 응시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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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4.04.0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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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괄(白活)이란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관청에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기 위해 올리는 청원서였다.발괄은 좋은 산소를 찾기 위해 벌이는 소송(산송), 빚을 갚지 못해 벌어지는 다툼(채송) 등과 같은 일로 관에 청원을 올릴 때 사용됐다. 사진 속 고문서는 ‘산송발괄’로 지난 1961년 (효종 2년) 이유형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문서다. 이유형은 아버지 이엽의 묘소를 옮기기 위해 묫자리를 물색하던 중, 사동방 한소미학봉 아래에 있던 좋은 자리를 찾아내고 이곳으로 이장하려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30여 걸음 떨어진 곳에 한 상놈의 묘가 있어 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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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4.03.1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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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까지 우리 학교 서문(당시 정문) 앞으로 기차가 지나갔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익산에서 출발해 삼례를 지나 동산역, 덕진역, 전주역을 거쳐 여수까지 향했던 전라선 기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주시내를 가로지르며 달렸던 전라선 열차는 등교와 출근을 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전주시민들의 삶과 추억을 함께했다.특히 전라선 열차는 전대인들의 발이 돼주기도 했다. 우리 학교 앞에 있던 덕진역(현 덕진광장)은 통학생들로 늘 붐볐고, 학교 앞 철로는 자연스러운 공간분할과 소실점이 되었기에 졸업앨범 단골 촬영 장소였다.198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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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4.03.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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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는 자연경관을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자연을 살아 생동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동양 특유의 자연관이 반영됐다.토림 김종현(土林 金鐘賢, 1913~1999)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전주에서 활동한 서화가다. 산수, 영모, 화조, 인물 등 다양한 화목을 다뤘으며, 사실적인 실경산수를 주로 그렸다. 수묵산수화에 조예가 깊었는데 그중에서도 설경(雪景)을 잘 그리는 작가로 평가받았다. 10폭 산수화 병풍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짙은 산록의 여름, 붉은 낙엽이 지는 가을, 포근한 눈으로 감싼 겨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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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12.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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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상여다. 지난 1972년 9월 20일에 우리 학교 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당시 기증자는 유승국 선생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전주시 한성여관 인근에서 약방을 했다고 전해진다.이 상여는 길이 560cm, 너비 120cm다. 상여 앞에는 T자 형태로 중앙에 귀면(鬼面), 좌측에 청룡, 우측에 황룡이 묘사돼 있다. 좌우 옆에는 상단에 봉황과 공작, 하단에 ㅡ자 형태의 청룡과 황룡이 장식돼 있다. 맨 뒤에도 ㅡ자 형태의 두 용이 붙어 있다.간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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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11.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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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합은 여러 개의 합을 층지게 포개어 한조로 만든 그릇이다. 반찬을 담는 뚜껑이 있는 그릇이라 해 찬합이라 불렀다. 보통 둥글거나 네모난 형태로 만들었는데 구조상 찬합 안에 칸을 막아 여러 가지 음식을 담을 수 있게 된 것과 똑같은 합을 여러 개 포개어 한 벌로 쓸 수 있게 된 것이 있다. 합을 3~5층으로 차곡차곡 올려놓고 이것을 다시 나무로 된 궤에 넣어서 운반이나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거나, 서랍 몇 개를 포개어 바로 들 수 있게 했다. 목재로 만든 목합이 대부분이고 이밖에 사기로 만든 것, 대나무나 등나무 줄기를 쪼개어 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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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11.1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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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에 무수히 많은 알이 열리는 포도는 다산과 번성을 상징하며 공예품 장식 문양과 그림의 소재로 활용됐다. 최석환은 조선 후기 서화가로 산수화, 사군자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지만 특히 포도그림이 유명하다.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인 오세창이 저술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에는 ‘호가 낭곡이며 전북 옥구군 임피면(現 군산시)에 살고 포도를 잘 그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8폭으로 그려진 이 포도그림은 오른쪽 두 폭의 중앙에서 시작된 줄기가 원을 그리듯이 휘돌아 왼편으로 넝쿨이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굵고 빠른 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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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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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는 우리나라 전통 장례식 때 상여를 장식하거나 무덤에 같이 묻는 용도로 사용된 조각상이다.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목우(木偶)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꼭두는 주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으며,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많이 사용됐다. 꼭두는 인물 또는 동물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다양한 모양만큼 의미도 다채롭다. 남·녀, 동자·동녀 모양의 꼭두는 망자의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연주자 꼭두는 저승으로 가는 길을 놀아주기 위함이며, 봉황이나 용과 같은 상서로운 꼭두는 잡귀를 물리치고 망자의 영혼을 지켜줘 죽은 이가 편하게 저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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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09.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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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족등은 불빛으로 발밑을 밝히기 위한 휴대용 등기구다. 둥근 형태가 마치 박과 같아 박등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조선시대에 순라군들이 순찰하며 도적을 잡는 데 사용해 도적등이라고도 불렸다. 댓가지나 철사 등으로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외피는 기름먹인 종이를 발라 두껍게 입혔다. 조족등 표면에는 길상어문, 박쥐문 등의 문양을 그려 넣기도 한다. 조족등은 내부에 앞뒤로 흔들리는 회전식 철제 초꽂이가 있어 어느 방향으로 등을 움직여도 초는 항상 수평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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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09.0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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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기러기 조각품으로 전통 혼례에서 사용했다. 검은색으로 눈을 그려 넣었으며, 음각선으로 날개와 꽁지를 표현했다. 옛날에는 혼례 때 살아있는 기러기를 예물로 주고 받았으며, 후에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로 대체하였다.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는 전안례(奠雁禮) 때, 기럭아범이 나무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신랑 앞에 서서 가며, 신부의 집에 도착하면 신랑이 이를 전안상(奠雁床)에 바치고 절을 한다. 대례 전 식의 시작을 알리는 의물인 것이다. 기러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한다고 믿었기에, 목안은 새로운 가족이 될 신랑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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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06.07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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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임시로 마련한 제사상 그림이다. 유람이나 외부 일정 등으로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사상을 그림으로 표구해 상차림을 대신했고, 지방(紙榜, 종이로 만든 위패)을 써서 붙임으로써 제사의 예를 갖출 수 있었다. 그림의 배경은 꽃이 만발한 산(山)으로 표현했다. 맨 앞에는 향로가 놓인 상(床), 그 뒤에는 간소하게 차려진 술상, 그리고 마지막 뒤에는 위패를 모시는 교의(交椅)가 그려져 있다. 교의 그림에는 지방을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피치 못할 상황에서 간소하게 차려진 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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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05.2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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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주박모양병은 조롱박을 가공하거나 금속기, 도자기 등으로 조롱박을 본떠 만든 병이다. 표형병(瓢形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조롱박으로 만들거나 조롱박의 형태를 본떠 도자기로 제작된 병이다. 호리병으로도 불리는 표형병은 두 개의 둥근 박 모양 동체가 잘록한 허리를 통해 위아래로 연결되는 형태다. 덩굴에 주렁주렁 열리는 조롱박은 속에 많은 씨가 들어있어 번영과 다산의 의미로도 해석됐다. 길상의 의미를 지녔으며 폭넓게 사용된 기종이니만큼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고려시대에는 금속기, 청자, 도기로 제작됐으며, 조선시대에는 분청자와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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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05.0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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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출판되는 책은 무엇일까? 바로 족보(族譜)다. 족보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기록한 책으로 시조부터 현재 살아있는 후손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족보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족보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명하전(名下錢)을 내야만 했는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가지고 있는 땅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부담이었다. 이 문서는 1849년 고한두가 명하전을 내기 위해 논 6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문서이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 족보는 내가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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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3.04.1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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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기다리미를 이용하지만 과거에는 인두와 인두판을 사용해 다림질했다. 인두는 화롯불에 묻어 놓고 달궈 가며 옷감의 구김살을 펴거나 솔기를 꺾어 누르는 용도로 쓰였다. 인두 머리가 뾰족한 이유는 저고리 깃·버선코·배래·도련 등 정교한 곡선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런 인두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은 인두판이다. 인두판은 인두질할 때 밑에 천을 받치는 판으로 긴 나무판자에 솜을 덧대고, 무명이나 비단을 씌웠다. 또한 여러 가지 무늬를 수놓아 장식하기도 했다. 인두판을 양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인두질했으며, 인두판은 솔기를 꺾거나 풀칠할 때
문화
전북대신문
2023.04.0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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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배는 조선시대 관복의 가슴과 등에 장식한 표장(表章)이다. 왕족의 것은 보(補)라고 하며, 곤룡포에 원형의 보를 가슴, 등, 어깨에 붙였다. 문무백관의 것은 네모진 흉배를 가슴과 등 두 군데에 붙였다. 흉배는 원래 문무관 3품 이상만 착용하다 연산군 때에 이르러 1품에서 9품까지 모두 착용하게 됐다. 단호흉배는 호랑이가 수놓아져 있는 무관의 것이다. 무관의 용맹을 상징하는 호랑이가 새겨져 있으며, 호랑이의 좌우에는 여러 형태의 구름이 가득하고, 하단에는 불로초·산호·파도·바위·물방울 등을 수놓았다.
문화
전북대신문
2022.12.0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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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지구는 땅을 파고 뒤집고 정리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대부분 타제석기이며 간혹 날 부분을 마연한 것도 있다. 크게 괭이와 보습으로 분류되는데 괭이는 땅을 일구거나 파서 낟알을 심는 데 사용됐고 보습은 땅을 갈아서 흙덩이를 일으키거나 뒤엎는 데 사용됐다. 날이 무겁고 둔탁하며 나무 자루와 날을 직각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을 괭이, 날이 납작해 나무 자루와 평행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을 보습으로 분류한다. 굴지구는 신석기시대 농경구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원시 농업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다.
문화
전북대신문
2022.11.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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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문자를 쓰거나 채연에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릴 때 벼루에 적당한 양의 물을 떨어뜨려 줘야 한다. 백자 산수무늬 사각 연적은 그 목적을 위해 고안된 그릇이다. 이는 방형(方形)의 사각연적이며 윗면의 가장자리에 청화안료로 윤곽선을 돌리고 그 안에 산수문을 그렸다. 윗면 중앙에는 입수구를 만들고 옆면의 한 모서리에 주구를 붙였다. 옆면 전체에는 화문(花文)을 그려 넣었다. 굽은 모서리 네 곳에 굽다리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형태는 19세기에 유행하던 연적의 형태다.
문화
전북대신문
2022.11.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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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간토기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졌던 대표적인 그릇이다. 그릇 표면에 산화철을 바른 뒤 곱게 연마해 구워내면 붉은간토기가 만들어진다. 이는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당시에도 이와 같은 천연색 토기는 매우 드물었다. 집안에서 출토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무덤 안에 부장품의 형태로 일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근거로 혹자는 죽은 이의 영혼이 그릇 안으로 들어가 평안한 사후를 보내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붉은색이 주술과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보니 현대인들의 마음을 궁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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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2.11.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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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의 숫자와 모양에 따라 패를 맞추는 전통적인 놀이도구로 강패, 아패, 호패라고 부르기도 한다. 골패는 모두 32쪽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를 가지고 227점을 만드는 놀이가 바로 골패놀이다. 골패놀이는 보통 둘 또는 네 명이서 진행된다. 놀이 방법은 지역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며 대략 8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골패는 투전, 쌍륙과 함께 도박성이 강한 놀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골패는 유희요도 전해지는데, 가야금 병창으로 불렀던 골패타령에서는 골패의 별칭들과 골패를 가지고 노는 방법들이 잘 녹아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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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22.10.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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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는 종이, 붓, 먹과 함께 흔히 문방사우라 한다. 벼루의 형태는 장방형을 기본으 로 원형, 타원형 등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벼루는 여러 무늬를 조각해 장식한 것이 많은데, 가장 많은 것이 포도 무늬이며 이밖에도 용, 연꽃잎, 십장생, 사군자, 태극 문양 등으로 장식했다. 이 유물의 형태는 보편적인 장방형이며, 먹을 가는 부분인 연당과 먹물을 보관해 쓰는 연지가 두 개의 원이 겹쳐져 있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것은 바로 달과 해를 형상화한 것이다. 벼루의 전면에는 잉어 모양의 물고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문화
전북대신문
2022.09.27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