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에서 만나면 형이라 불러주세요!”

해설 중인 황덕연(영어영문·18졸) 해설위원
해설 중인 황덕연(영어영문·18졸) 해설위원

 

자신 알아봐 준 지도교수 조언으로 해설위원 꿈꿔
드라마틱한 스페인 여행 경험이 꿈 이루게 한 계기
친숙하고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해설위원 되고파

 

“위원님!”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덕연이 형”이라고 부르게 됐다. 직접 만난 ‘인간 황덕연’은 그런 사람이었다. 딱딱하기보다는 친근하고, 날카롭기보다는 둥근. 매주 찾아오는 주말 새벽, 활기 넘치게 축구 경기를 해설하는 ‘해설위원 황덕연’과 똑같았다.

황 위원은 유년시절 매우 외향적이었다. 방송인들 중에는 방송에서의 캐릭터와 현실에서의 자신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이들도 있지만, 황 위원은 그렇지 않다. 그의 친구들이 모두 입 모아 “덕연이는 방송 모습이 실제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아놓은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다. 황 위원은 외향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즐겼다. 특히 대학교 때는 조별과제 중에 발표가 제일 쉬웠다고 한다. “사람들이 대개 수줍어서 발표를 꺼리잖아요? 저는 발표가 제일 쉬웠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경험을 계속 쌓다 보니 지금의 방송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황 위원의 성장 배경에 ‘축구’와 ‘전북’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어렸을 때 친구들과 공을 차면서 축구를 좋아하게 된 그는 전북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보는 즐거움’을 접하기 시작했다. 전북에는 전주를 연고로 한 ‘전북현대모터스(이하 전북현대)’라는 축구 구단이 있다. 황 위원은 “지금은 전북현대의 홈구장이 전주월드컵경기장이지만 어릴 적엔 전주종합경기장이었다”며 “접근성이 좋아 자주 경기장을 찾았고 자연스레 국내 축구리그(이하 K리그)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중학교에 진학할 때쯤 박지성 선수가 유럽에 진출해 해외축구까지 챙겨보며 축구라는 스포츠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2012년, 지도교수 상담을 간 23살의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황 위원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축구와 관련된 방송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한 것. 황 위원은 그때부터 해설위원이 되기 위해 조금은 특별한 대외활동과 공부를 시작했다. 먼저, 전북현대에서 모집하는 명예 기자단의 해설자 부문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 당시엔 K리그 중계 상황이 넉넉지 않아 방송국에서 직접 중계하는 경기가 많지 않았다. 이에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캠을 띄워 경기를 중계했는데 이때 황 위원이 해설을 맡았다. 이 활동은 훗날 SPOTV에 해설위원으로 입사할 때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

그는 스페인어 공부도 시작했다. ‘해설위원’은 아니더라도 축구 관련 직종에서 일하고 싶었던 황 위원은 전북현대 구단에 전화를 걸어 전북현대 프런트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부터 물었다. 그의 질문에 전북현대 관계자는 “중국어,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많으니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를 공부해 보라”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고, 그 길로 황 위원은 서어서문학과(現 스페인중남미학과) 복수전공을 신청했다.

공부에 열중하던 그에게 또 하나의 극적인 계기가 생겼다. 2014년 친동생과 떠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길 여행에서 한국인 셰프가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게된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현지 직원부터 셰프님까지 모두 저를 잘 챙겨주셨어요. 그때 여러 얘기를 나누던 중 셰프님이 ‘너는 영어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이곳에서 숙식을 제공할 테니 게스트하우스에서 보조업무를 하며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해주셨죠. 고민 끝에 제안에 응했습니다.” 이후 3개월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스페인어를 공부한 그는 당시의 경험이 “인생을 바꾼 값진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황 위원은 스페인어를 더 자세히 배워야겠다는 목표하에 2015년 4월 스페인 말라가로 유학을 떠났고, 귀국 후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포츠 전문 채널 SPOTV 축구 해설위원에 당당히 합격했다.

해설위원이 된 그는 2019년 9월 25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 대 헤타페의 경기 중 이강인 선수의 데뷔 골을 중계하며 많은 축구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전설의 멘트를 남겼다. “차범근부터 시작해서 박지성이 꽃피우고, 손흥민이 만개시킨 한국의 해외리거 역사, 이 득점의 역사에 이강인 역시도 이름을 남깁니다!” 사실 이 멘트는 어느 정도 준비된 멘트였다. “당시 이강인 선수 소속팀인 발렌시아의 경기에 계속 배정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강인 선수가 골을 넣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멘트를 준비했어요. 다른 선수들이 득점했을 때처럼 똑같이 ‘골’을 외치는 것은 의미가 없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해외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펼치고 있는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선수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를 주고 싶어 준비했습니다. 이 멘트 덕분에 제가 계속 해설위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웃음).”

그는 해설위원은 전문성과 재미를 모두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황 위원은 “사람마다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축구 중계도 엄연히 방송”이라며 “사람들이 축구 중계를 보며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전문성을 높이는 것은 정보 수집 싸움이기에 노력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지만, 말을 재미있고 조리 있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때문에 축구 해설위원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면, 말로 상황을 유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우선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 위원은 해설위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U-23 축구국가대표팀 킷 매니저, 유튜버까지 병행하고 있다. 이는 해설위원이라는 직업의 고용 안전성 문제 때문이다. 대부분의 해설위원들은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해설 건당 수당을 받다 보니 한 달에 3~4번 중계를 들어가는 신입일 때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황 위원은 기자 생활을 병행하기도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고 이후 킷 매니저와 유튜브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킷 매니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사용하는 모든 장비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 유튜브의 경우 구독자 37만 명을 보유한 ‘이스타TV’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으며 구독자 2만 명의 개인 방송 채널인 ‘황덕연’을 운영하고 있다.

황 위원은 “해설위원은 워라밸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계 일정이 잡히면 경기를 치르는 팀들의 경기를 분석하고 해외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분석 자료와 비교한다. 대부분 평일엔 이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주말엔 방송국에 출근해 경기를 중계하고 중계가 끝난 이후엔 경기 리뷰에 참여한다. “대부분의 직장이 주말에 쉬는 데 비해 해설위원은 활동 시간대가 유럽시간에 맞춰 있어 몸이 힘들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만나거나 쉴 시간도 거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즐긴다. ‘일이 좋아서 한다’와 ‘일이기 때문에 한다’를 백분율로 따져 달라는 질문에 그는 70대 30이라고 답했다. “일을 시작할 때는 100대 0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이 좋았어요. 하지만 평소 꿈꿨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약간의 괴리감도 느끼고 번 아웃도 오면서 ‘일은 의무’라는 관점이 커진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좋아서 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미래를 설명했다. “언제까지 계속 해설위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전문성과 웃음을 동시에 잡아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또 친숙한 해설위원이 되고 싶어요. 현장 중계를 가면 저를 알아보고 ‘덕연이 형’이라고 불러주는 팬들이 있어요. 전 누구에게나 그렇게 불릴 수 있는 해설위원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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