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이란 숭고한 헌신과 봉사입니다”

의료봉사 활동 펼치는 심병수 동문.
의료봉사 활동 펼치는 심병수 동문.

 

‘여수 지구촌 사랑나눔회’서 의료봉사단 활동
필리핀에 여수진료소 설립하여 진료 이어나가
“의대 후배들에게 해외 의료봉사 적극 추천해”

 

병원 진료실 안, 하얀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조금 전까지 환자들을 진료하고 한숨을 돌리고 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그는 “흐린 날씨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죠?”라며 기자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절이 몸에 밴 따스한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전남 여수에서 ‘심병수 신경외과의원’을 운영하는 심병수(의대·91졸) 원장으로, 지난 2007년부터 자비를 들여 해외 오지로 의료봉사를 나가고 있다.

큰 꿈은 없었지만 공부 하나는 잘했던 전북 임실 출신의 시골 소년. 그는 무심코 가장 친한 친구를 따라 의대에 진학했다. “이왕 공부하는 김에 난도가 높은 학문을 배우고 싶어 세부 전공을 신경외과로 택했어요.” 전문의 자격증 취득 후 그는 여수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우연히 지금의 병원 자리를 보고 지난 2005년 5월 여수에 개원했다. 개원 2년 후부터는 여수 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한 ‘여수 지구촌 사랑나눔회’의 의료봉사단 활동을 시작으로 13년 동안 의료봉사를 위해 해외로 나갔다.

심 원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의료봉사 지역으로 지난 2007년 방문한 탄자니아를 꼽았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10살 남짓한 아이의 이마에 나무에 긁힌 상처가 있었어요. 드레싱과 항생제 한 알로 나을 수 있는 상처였는데, 그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다 곪아서 생명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더라고요. 이런 가슴 아픈 상황에 처한 이들을 살리기 위해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죠.”

해외로 의료봉사를 가기까지의 과정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가 챙겨 간 약품이나 구호 물품을 공항 관리들이 가져가거나, 뒷돈을 바라면서 통관시켜주지 않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역경 속에서 해외 봉사를 다니며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한 번 의료봉사를 가면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만이 허락됩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많은데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한정적이라 아쉬웠죠. 그래서 여수 지구촌 사랑나눔회에서 필리핀 북부 산페드로시에 여수의 이름을 내건 여수진료소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매년 여름휴가마다 여수진료소를 찾아 환자를 치료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이하 코로나)로 인해 활동을 멈춘 상태입니다.”

그는 의료봉사를 ‘마약’ 같다고 표현했다.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이어 그는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품길 기도한다”며 “아이들이 꿈을 갖고 자라 오지를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심 원장은 코로나로 해외 봉사를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필리핀 산페드로시의 여수진료소에 필요한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의사는 환자를 보살필 때는 한없이 너그러워야 하며, 자기 자신에게는 언제나 엄격하고 정직해야 한다”며 의대 후배들에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의료봉사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