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중한 기록을 찾아 드립니다”

2001년 전주 최초로 데이터 복구 사업 시작
소실 데이터 돌 사진부터 졸업 논문까지 다양
꾸준한 노력으로 전북 넘어 전국 업체 되고파

 

“저에게 데이터 복구는 돈 그 이상의 가치입니다.” 신혼 시절 사진, 아이의 돌 사진, 대학원생의 졸업 논문까지 고객이 잃어버린 추억과 기록을 되살리며, 올해로 21년째 데이터 복구 회사를 운영 중인 박갑표(경영·석사과정) 씨는 오늘도 데이터 공부에 한창이다.

“농사짓는 지역에서 왜 이런 일을 하냐, 네가 뭘 배웠다고 어떻게 하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학창 시절에 컴퓨터 좀 한다는 소리 들은 게 전부니까요.” 지난 2001년, 그가 처음 창업을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무모하다고 말했다. 데이터 복구의 불모지인 전주에서 데이터 사업은 가당치도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전북에서 잃어버린 데이터를 서울까지 가서 복구해야 하는 건 낭비잖아요. 사람들의 시간과 돈을 허비하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그는 스스로 부딪치며 기술을 익혔다.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던 당시의 그는 열정 하나만으로 데이터 하나를 붙잡고 몇 날 며칠 연구했다. “일을 시작하면 해결할 때까지 잠이 안 와요. 손님은 계속해서 데이터를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요.” 그는 그를 지나쳤던 수많은 고객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저를 찾는 고객들은 소중한 데이터를 잃어버려 힘들어하시는 분들이에요. 너무 많아서 세세하게 꼽을 순 없지만, 데이터를 복구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보람차요.”

그는 데이터 복구 일을 하며 가장 바빴던 때로 3·20 전산 대란을 꼽았다. 당시 주요 방송사, 대기업, 은행 등을 포함한 3만 2천여 대의 시스템이 악성 코드에 감염됐다. 그로 인해 데이터가 손상되거나 삭제됐던 회사들은 일제히 그를 찾았다. “장난 아니었죠. 일주일 꼴딱 밤새웠어요. 전주뿐만 아니라 전북권에서도 감염됐다 하면 죄다 들고 찾아왔으니까요. 복구하고 납품하는 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몰라요. 한 700곳 했으려나요?” 이후에도 그는 세아제강, 현대자동차 등의 대기업부터 각종 금융권 및 대학을 주요 고객으로 삼으며 데이터 복구 분야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박갑표 씨의 목표는 여전히 하나다. 그가 작업해서 복구되지 않는 건이 없게 하자는 것이다. “오래됐다고 맛집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오래가는 건 다 이유가 있죠. 21년째지만 절대 대충하지 않아요. 머리 빠지게 공부했고 지금도 공부 중이에요.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해서 나중에는 전북권을 넘어서 전국에서 ‘데이타픽스’ 하면 알만한 업체가 되고 싶어요.”

지혜민 기자 202210263@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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