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 동료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소방관 생활 임해

졸업 후, 진로 고민 끝에 소방공무원 준비
똑같은 사건은 없기에 현장의 목소리 중요
성실하게 임하다 보면 계속해서 길 열릴 것

 

119 신고 전화가 매섭게 울린다. 소방서 내부에선 하던 일을 일체 중단하고 수화기를 든 동료를 주시한다. 신속하게 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소방차 속에서도 소방대원들은 상황을 전해 듣거나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회의하며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이선재(행정·석사과정) 전 전북소방본부장은 30년을 한결같이 지역 화재 현장에서 활동해 왔다.

그는 어릴 적 남원 산골의 외딴집에서 자랐다. “요즘은 흔치 않은데, 남의 산이나 밭을 관리하는 직업을 ‘산지기’라고 해요. 가난한 사람들이 산지기를 많이 했는데 그중 한 명이 제 부모님이었어요.” 풍족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 전 본부장은 가난을 꼭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취업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학교 금속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전공이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 소방공무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됐고 시험을 준비했다. 당시에는 소방 안전에 관한 관심도, 연구와 투자도 미비했다. 그는 “소방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국가 기반이니 언젠가는 떠오르는 분야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험생과 교육생 시절을 거친 이선재 전 본부장은 지난 1987년 전남 여수 소방서의 지방소방위로 임용됐다. 그가 소방관이 된 후 처음으로 출동한 곳은 화재 현장이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장애인 분이 대피를 못해 연기를 마시고 숨져있었어요.” 그는 첫 현장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한 후 소방관의 사명감을 깊이 헤아리게 됐다고 전했다. 이후 ‘저 집이 내 집이다, 저 사람이 내 가족, 동료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현장에 임했다.

이 전 본부장은 소방관 재직 시절 현장에도 투입됐지만, 주로 소방본부에서 기획·조직과 인사를 담당했다. 그는 행정에 관한 전문 지식을 쌓고자 우리 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해 낮에는 소방관으로, 저녁에는 학생으로 생활했다. 이선재 전 본부장은 주로 사무실에서 업무를 봤지만 언제나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장이 답이다’는 그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어디에도 똑같은 현장은 없어요. 그렇기에 사무실에서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직접 가서 현장에 있는 대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행정에 반영해야 합니다.”

현재 그는 소방본부장 이상의 직급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는 전문경력 인사에 선발돼 원광대에서 초빙교수로 강의 중이다. 이선재 전 본부장은 학생들에게 항상 ‘성실성’을 강조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시간을 잘 활용해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에 성실하게 임하다 보면 꾸준히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안전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사회에 공헌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박의진 기자 pjeen1009@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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