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 어진, 향교…걸음마다 조선의 숨결을 느끼다

기와 가득한 한옥부터 광활한 지평선, 황금빛 서해까지. 마음만 있다면 닿을 수 있는, 전북의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있다. 이곳은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어 방문객들의 마음을 흔든다. 전북대신문이 대중 교통과 도보로 누빌 수 있는 전북 곳곳의 명소를 취재했다. <편집자 주>

▲전라도 행정의 중심지 전라감영과 풍남문

▲전라감영 입구에 놓인 관람 시간 안내 표지판이다. 뒤로는 선화당이 보인다.

조선왕조의 뿌리 전주에는 다양한 조선 시대 유적이 남아있다. 여러 유적 중 전주의 대표 관광지인 한옥마을 인근에 있는 곳을 방문했다. 그중 학교와 가장 가까운 전라감영을 첫 번째로 찾았다. 구정문 상권가를 가로질러 기린대로로 나온 뒤 팔달로로 진입해 걷다 보면 어느새 전라감영에 도착한다. 약 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운동 삼아 걷기에 딱 좋다.

나라의 군수품을 다
호남에 의지하고 있으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나라가 없는 것이다

전라감영 표지석에 쓰여 있는 문구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에 전북, 전남, 제주 지역을 담당하던 관찰사의 근무지다. 감영 건물 대부분이 근대화 과정에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지난 2020년 동편 부지의 7개 건물이 복원됐다. 전라감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선화당이 반긴다. 멋스러운 기와가 인상적인 선화당은 관찰사가 집무실로 이용하던 곳이다.

전라감영의 건물 내부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건물 내부에서는 전라감영에서 진행되는 문화 행사가 이뤄지곤 한다. 한때는 업무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지금은 업무에 지친 현대인들의 도시 속 쉼터로 쓰인다. 전라감영은 오후 9시까지 관람할 수 있어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로 선정하는 것도 탁월한 선택이다. 밤에는 환한 조명이 켜져 있어 한 층 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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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은 날 전주 풍남문의 모습이다.

전라감영에서 발길을 돌려 풍남문으로 향했다. 풍남문으로 향하는 골목은 비교적 인파가 적어 고즈넉함이 배가 됐다. 전라감영에서 약 5분 정도 천천히 걸어가면 풍남문에 다다른다. 풍남문은 전주성의 남쪽 문이며, 공식 명칭은 ‘전주 풍남문’이다. 차 타고 아무런 의식 없이 지나쳤을 때와 달리 가까이에서 본 풍남문은 거대했다. 전라감영 방면에서 전주 풍남문을 바라보면 ‘호남제일성’이라고 쓰인 현판이 눈 에 띄는데, 이는 전주가 전라도 행정 중심지였음을 나타내는 징표다.

▲경기전에서 만나는 태조 어진·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에 전시된 조선왕조실록 사본이다.
▲전주사고에 전시된 조선왕조실록 사본이다.

풍남문에서 길 한 번만 건너면 한옥마을에 도착한다. 한옥마을에 자리한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사적이다. 공식 명칭은 ‘전주 경기전’이며 내부에는 정전, 어진박물관, 전주사고가 있다. 경기전 운영시간은 시기별로 다른데, 3~5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운영종료 1시간 전 입장이 마감되기 때문에 미리 가는 것이 좋다. 만 13세 이상, 만 24세 미만은 청소년 요금이 적용돼 2000원에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전주시민의 경우, 할인이 적용돼 더 저렴한 값으로 입장할 수 있다.

경기전 정전에 도착해 마주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조선을 건국한 위인다운 위엄을 풍겼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어진을 바라보는가 하면, 저마다의 자세로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정전을 지나 경기전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면 전주사고가 나타난다. 전주사고는 지난 1439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자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춘추관·충주·성주사고의 실록도 있었지만, 임진왜란 때 사라지고 전주사고 실록만 남았기에 역사적 가치가 상당하다. 현재 전주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사본이 전시돼 있다.

전주사고 구경을 마친 뒤, 어진박물관으로 향했다. 어진박물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왕의 초상화를 전문으로 다루는 박물관이다. 방문 당시 어진박물관은 중축 공사를 하고 있어 일부만 관람 가능했지만, 다양한 왕의 어진부터 체험요소까지 즐길 거리가 여럿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월 27일부터 내년 1월까지 장기휴관이 실시돼 당분간은 어진박물관에 들어갈 수 없다. 어진박물관에서 나와 경기전 출입구로 향하는 길목을 걷다 보니 저 멀리 전동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동서양 건축양식을 동시에 볼 수 있어 특별했다.

▲자연과 함께 향교·오목대 두 배로 즐기기
경기전에서 향교와 오목대 방면으로 향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한옥마을의 중심거리인 태조로를 따라 올라가면 오목대가 나온다. 태조로는 풍남문에서 전동성당 앞을 지나 경기전으로 갈 때 걸었던 길이다. 두 번째 방법은 천변 길을 이용해 향교에 먼저 들르는 것이다. 기자는 두 경로 중 천변 길을 선택했다. 천변 따라 자연을 만끽하고, 완연한 봄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향교는 유학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가 실시되면서 교육 기능을 상실했고, 지금은 제사 장소로 쓰인다. 또한, 종종 결혼식 등의 행사가 진행되며 특히 가을에는 은행나무 명소이자 비빔밥축제의 주요 장소로 활용된다. 향교는 큰 나무와 잔디밭이 있어 소 풍 장소로도 제격이다.

▲오목대를 찾은 방문객이 비를 바라보고 있다.
▲오목대를 찾은 방문객이 비를 바라보고 있다.

관람 마감 시간인 오후 6시까지 향교를 둘러보고 오목대로 향했다. 오목대는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한 뒤 잔치를 벌였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는 고종 친필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비가 이 곳에 세워져 있다. 오목대에서는 한옥마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저녁 시간대에 가면 노을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오목대에서 내려와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길목에 다시 한옥마을을 찾았다. 밤을 맞은 한옥마을은 상점들의 불빛으로 가득 차 낮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한옥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팔달로로 나오면 버스를 탈 수 있다. 하루에 수 십 대의 버스가 한옥마을과 우리 학교 사이를 오가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다.

버스를 타임머신 삼아 조선시대로 시간여행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익숙하게 지나쳤던 곳들조차 조선의 어디쯤으로 느껴질 것이다.

백선영 기자 seonyoungkk@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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