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부터 문학까지 한 곳에서

기와 가득한 한옥부터 광활한 지평선, 황금빛 서해까지. 마음만 있다면 닿을 수 있는, 전북의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있다. 이곳은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어 방문객들의 마음을 흔든다. 전북대신문이 대중 교통과 도보로 누빌 수 있는 전북 곳곳의 명소를 취재했다. <편집자 주>

▲혼불의 근원지, 노봉마을

▲남원시 사매면에 소재한 혼불분학관은 『혼불』의 배경과 최명의 작가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관 중 하나이다.
▲남원시 사매면에 소재한 혼불분학관은 『혼불』의 배경과 최명의 작가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관 중 하나이다.

대하소설은 창작된 세계가 아닌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민족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징이다. 대표적인 대하소설 최명희 작가의 혼불은 1930년대 근대화 시기를 배경으로 남원 노봉마을의 매안 이씨 집안 종부 3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의 주요 배경인 노봉마을에 있는 혼불문학관은 최명희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른 아침 남원역에 도착해 사매면에 있는 혼불문학관으로 향했다. 매일 4번에 걸쳐 남원역에서 노봉까지 향하는 5-522번과 5-523번 버스를 이용하면 혼불의 배경인 노봉마을에 도착할 수있다. 노봉마을 초입에서 아래로 흐르는 천 하나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성암 기슭 아래 혼불에서 청암부인이 만든 청호저수지와 함께 문학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2004년 개관한 혼불문학관은 혼불의 주요 인물과 배경들이 양반가 이씨 집안을 다루기에 그 배경에 착안해 고풍스러운 한옥의 형태를 띠고 있다. 건물로 들어서면 17년에 달하는 연재 기간 혼불 이야기와 최명희 작가의 삶을 요약해 놓은 각종 약력과 축소모형들이 혼불을 읽지 않은 이도 소설 속 세계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사전에 문학관측에 연락하고 방문한다면 문화관광사의 해설도 들을 수 있기에 혼불 세계관을 더 재밌게 이해할 수 있다. 기자는 방문 전 연락을 통해 더욱 생생한 해설과 함께 혼불에 접근할 수 있었다.

▲지난 1932년 지어진 서도역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기차역 중 가장 오래된 목조 역이다.
▲지난 1932년 지어진 서도역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기차역 중 가장 오래된 목조 역이다.

1시간가량의 관람을 마치고 문학관을 나서 20분가량 마을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혼불의 또 다른 배경인 서도역이 등장한다. 강모가 전주에서의 유학 생활을 위해 이용하던 역이며, 강모에게 시집온 효원이 처음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역사와 철길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에 혼불의 배경을 직접 둘러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 중 하나이다. 또한 넓은 들판 위 메타세쿼이아 나무 몇 그루 사이에 놓인 녹슨 철길은 평소에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빛바랜 서도역사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역사이기에 이를 구경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고전 문학의 배경지 광한루원

▲우리나라 4대 누각 중 하나인 광한루는 아름다운 누각과 은하수를 표현한 연못의 모습을 자랑한다.
▲우리나라 4대 누각 중 하나인 광한루는 아름다운 누각과 은하수를 표현한 연못의 모습을 자랑한다.

혼불의 배경을 느낀 후 점심쯤에 또 다른 남원의 모습을 보고자 시내에 있는 광한루원으로 발걸음 을 옮겼다. 개장 시간은 하절기 기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며 만 19세 이상 64세 이하는 3천원의 입장료가 있지만 오후 6시부터는 야간 개장으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광한루원은 지난 1419년 황희정승에 의해 광통루라 지어졌고, 이후 조선 초기 유학자 정인지에 의해 다시 광한루라 이름 붙여졌다. 광한루는 고전소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의 첫 만남이 이뤄진 배경이기도 하다. 광한루의 한자를 풀이하면 넓고 차가운 누각에 불과하지만, 정인지는 달의 궁궐인 광한청허부에서 이름을 빌려 왔다. 우주공간과 은하수를 표현하고자 했기에 광한루 누각 앞에는 은하를 뜻하는 호수와 천상을 연결한다는 오작교가 함께 있다.

야간 개장으로 이미 유명한 광한루였지만 밝은 낮에 들어서니 또 다른 매력을 드러냈다, 푸르고 우거진 수목이 호수와 호수 위 영주각 사이를 메우고 이를 가로지르는 오작교를 건너 모습을 드러내는 광한루의 모습은 왜 광한루원이 우리나라의 4대 누각 중 하나인지를 깨닫게 했다. 다시 오작교를 건너 광한루원의 끝자락으로 향하면 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월매집이 재현돼 이를 구경할 수 있었다.

▲침략 역사의 기록, 남원성과 만인의 총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의 지킨 1만명의 충혼들이 합장된 만인의 총이다.

광한루원을 나와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로 향하는 의총로에 접어들었다. 남원 시내를 남북으로 잇는 이 도로를 20분가량 걸으면 도심 가운데 자리 잡은 남원성곽을 마주할 수 있다. 평범하고 오래된 유적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과거 남원 침략의 역사를 알려주는 슬픈 유적 중 하나이다. 통일신라 때부터 존재했던 남원읍성은 중국식 읍성을 본떠 만든 형태로 그 둘레가 3.4km에 달했다. 예로부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통로의 역할을 남원이 행하고 있었기에 남원읍성은 조선시대 왜구의 침략을 방어해야 했다. 하지만 정유재란 당시 1만명의 아군이 5만 6천명의 적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사흘간 치열한 전투로 방어를 이끌었지만, 읍성 내에 백성 대부분은 전사하고 말았다. 남원읍성은 이러한 치열한 전투의 역사를 가진 성곽이다. 근대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성곽 대부분이 유실됐지만, 언덕 위의 일부 성곽이 꿋꿋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남원읍성을 뒤로하고 다시 5분 정도 의총로를 걸으면 남원 뚜벅이 기행의 마지막 목적지 ‘만인의 총’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료 관람 시설로 하절기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고 있다. 만인의 총은 앞에 지나친 남원읍성에서 정유재란 당시 열한 항쟁을 펼친 1만명의 백성을 기리는 사당으로 전쟁 직후인 지난 1612년 최초로 건립됐다. 의총을 향한 수많은 계단을 홍살문, 충의문, 성인문 순으로 올라서자 충신 위패와 무명용사 위패를 모신 충렬사를 맞이할 수 있었다. 충렬사 뒤로 이어진 계단을 더 올라가자 만인의 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별도의 기념관도 있었지만, 새 단장을 위해 내년 5월까지 예정된 휴관은 아쉬움을 더했다.

남원 기행의 시작 남원역으로 돌아와 다시 전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가까운 목적지였으나 우리 문학과 우리의 역사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임은 틀림없었다. 도심에서 벗어나 문학의 아름다움과 지역의 역사를 느껴보고 싶다면 공존의 도시 남원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문준혁 기자 moondori3840@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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