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지속했던 민관협력, 이번에는 없었다

전주시, 논란 일자 수목제거 잠정중단
과거 복원사업 진행해 우수사례 선정
“시민과의 소통 없는 행정, 반성해야”

▲벌목이 잠정 중단된 4월 남
▲벌목이 잠정 중단된 4월 5일, 돌다리에서 청연루를 바라본 모습이다. 

“전주에서 60년 넘게 살았는데 하천이 넘칠랑말랑 비가 온 건 한 손에 꼽아.” 전주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성근(전주시·65세) 씨의 말이다. 폭우 시 하천 범람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천변에 있는 버드나무를 베었다는 말에 그는 “전주가 그리 비가 많이 오는 동네였느냐”고 의아해했다. 지난 3월, 전주시는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전주천·삼천 재해 예방 수목제거 및 준설작업’을 추진했다. 구체적으로 전주천과 삼천 11km 구간에 있는 버드나무를 비롯한 나무 260여 그루를 베고, 억새 군락지를 뒤엎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와 시민의 항의가 거세지자 전주시는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여는 말>

▲하천에 무성하던 버드나무는 어디로?

▲남천교 아래, 전주천변에 있는 버드나무가 잘려 밑동만 남았다.
▲남천교 아래, 전주천변에 있는 버드나무가 잘려 밑동만 남았다.

지난 3월, 전주시는 하천에 자생한 수목이 무분별하게 방치돼 폭우 시 하천 범람과 제방 붕괴를 일으키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정비를 한다며 벌목을 진행했다. 사업비 약 1억5천만원을 투자해 약 7km의 전주천 구간에서 120여 그루, 약 6km의 삼천 구간에 140여 그루를 제거했다. 억새밭 3800㎡도 갈아엎었다. 벌목을 마친 천변 일부 구간에 봄, 여름, 가을 계절별로 꽃이 필 수 있도록 계절 꽃밭을 조성하기 위해 파종을 마쳤다.

기자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전주천 곳곳을 방문했다. 한옥마을 부근에 있는 남천교 청연루에서 강 상류를 바라보니 버드나무가 단 한 그루밖에 보이지 않았다.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잘려 나간 버드나무의 밑동이 열 발짝에 하나씩 보였다. 억새도 뽑힌 채로 방치돼 있었다. 한편에는 꽃씨를 파종한 것인지 이랑이 볼록 올라와 있었다.

▲청연루 옆, 계절 꽃밭을 조성하기 위해 파종을 마친 모습이다.
▲청연루 옆, 계절 꽃밭을 조성하기 위해 파종을 마친 모습이다.

청연루 근처 남아있는 버드나무 앞에는 환경단체가 꽂은 버드나무 벌목 규탄 팻말이 꽂혀 있었다. 매일 전주천으로 운동하러 온다는 윤옥선(전주시·64세) 씨는 “어느 순간부터 버드나무들이 다 없어졌다”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는 “잡풀이나 제거하지 왜 멀쩡한 나무를 베느냐”고 덧붙였다.

▲윤옥선(전주시·64세) 씨가 버드나무 벌목 규탄 팻말을 잡고 있다.
▲윤옥선(전주시·64세) 씨가 버드나무 벌목 규탄 팻말을 잡고 있다.


▲‘무분별한 벌목이다’vs‘홍수 예방이다’
지난 3월 29일, 전주시의 벌목을 규탄하며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와 시의원 8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전주시가 집중호우 시 버드나무 군락지로 하천 범람이 커진다는 객관적인 자료도 내놓지 않은 채 사업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문지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전주시가 홍수 예방을 하겠다고 주장하나 하천관리의 1순위인 호안 정비는 뒷전”이라며 “지난 2020년 폭우로 쓸려 나간 호안은 서신보 하류에 무너진 채 방치돼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윤승 전주시 하천관리과장은 지난 2020년에 기상청이 작성한 ‘한국기후변화평가보고서’와 국립기상과학원에서 발행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단기간 강우 강도가 증가해 중소하천에서 홍수 발생 가능성이 늘어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홍수로 인한 하천 범람 시 하천 내에서 자라는 지장 수목이 유속을 방해하고 제방파손의 원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나무가 부러지거나 뽑혀 떠내려가다가 교량이나 구조물에 걸려 쌓인다면 댐의 역할을 해서 하천의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거나 범람해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지현 사무처장은 “버드나무와 억새군락은 야생동물과 고유종인 쉬리, 꺽지 등 많은 물고기를 불러 모았다”며 “자연적으로 뿌리내린 이들은 자연성을 회복한 전주천의 선물”이라고 반박했다. 문 사무처장은 가장 큰 피해자는 몸을 숨길 은신처와 서식처를 잃은 어린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이라 강조했다.

▲억새군락에 몸을 숨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모습이다.
▲억새군락에 몸을 숨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모습이다.


▲전주시 “벌목 논란, 소통 부족 때문”
지난 3월 이뤄진 벌목은 전주시가 전주생태하천협의회와 구체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더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문지현 사무처장은 전주시가 ‘물환경 보전을 위한 활동 지원 조례’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전주생태하천협의회와 논의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태하천 조성을 위해 20년 넘게 전주시와 시민사회가 협력했지만 어떠한 논의도 없이 한순간에 이뤄진 벌목이라 더욱 허망하다”고 덧붙였다.

벌목에 대해 이윤승 과장은 “아예 논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벌목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벌목 규모가 아닌 벌목 자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물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통 부족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전주생태하천협의회 상임의장을 맡은 오창환(자연대·지구환경과학) 명예교수는 지난해 7월 전주천 및 삼천 준설에 대한 자문을 요청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생태계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버드나무 개체수가 너무 많다면 솎아서 일부 나무를 제거하고, 물의 흐름이 원활하게 하도록 가지치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나무들을 한 번에 다 베어버린 현재 상황에 “이 정도의 벌목은 상상도 못 한 일”이라며 “20년간의 노력 끝에 겨우 복구한 전주천의 생태계가 파괴될까 걱정된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20년의 노력, 1급수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벌목 전 버드나무가 무성하던 남천교 부근 전주천의 모습을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제공)
▲벌목 전 버드나무가 무성하던 남천교 부근 전주천의 모습을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제공)

전주시를 가로지르는 전주천은 지난 19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도심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와 폐수, 콘크리트 제방 등으로 오염돼 4~5급수의 물이 흐르는 하천이었다. 심지어 전주천의 악취는 멀리서도 날 정도였기에 시민들은 전주천을 ‘똥물’이라 불렀다. 하지만 지난 1998년, ‘전주천 자연형 생태하천복원사업’을 통해 1급수의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탈바꿈했다. 전주천에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쉬리와 갈겨니, 버들치가 산다. 또,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멸종위기종인 삵과 흰목물떼새도 만날 수 있다. 여러 생명체가 살아가는 전주천은 환경부 자연형 하천정화 우수사례로 선정됐으며, 여러 지자체에서 모범사례로 인정받았다.

어떻게 4~5급수의 하천이 1급수의 우수사례 하천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지난 20년동안 시청과 환경단체 및 전문가로 구성된 전주생태하천협의회가 꾸준한 논의를 거쳐 전주 하천을 복원했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전주생태하천협의회에 자문했고, 전주생태하천협의회는 관련 연구와 조사를 진행해 전주시 하천 복원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언했다. 전주시는 조언을 듣고 복원 사업을 진행했으며, 전주시민과 환경단체는 꾸준히 관심을 두고 하천을 보살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전주천은 다시 생태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민관협력 방식의 성공모델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주시 하천의 내일을 위해
버드나무 벌목 규탄 서명운동에 참여했다는 조성빈(원예·21) 씨는 우리 학교 학생이자 전주 시민으로 큰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라며 “많은 버드나무가 이미 잘렸고, 전주시와 시민들은 생태하천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씨는 전주시는 이번 일을 반성한 후 앞으로 정상적인 절차와 소통을 거쳐 사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지현 사무처장은 전주시가 ‘물환경 보전을 위한 활동 지원 조례’에 따라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 책무를 지킬 것과 하천 벌목에 관한 기준을 마련한 후 사업을 추진할 것, 우범기 시장이 전주 하천의 자연경관과 생태계를 훼손한 벌목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오창환 교수는 홍수 시 하천 범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 근처에 쌓인 토사물을 제거하고, 쓰레기나 기타 인공물이 쌓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전주시는 홍수 시 나무가 하천 범람에 영향을 미친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전주시는 지난 3월 24일에 환경단체의 요청에 따라 벌목을 중지했다. 이윤승 과장은 이후 하천 전문가와 환경단체, 전주시 공무원으로 이뤄진 소위원회를 구성해 현장 확인과 사업 방향 및 방법을 논의해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미 260여 그루의 나무가 베이고 억새군락지를 갈아엎는 수목제거가 진행됐지만, 이후 작업이 재개되고 어떤 방향으로 전주천과 삼천을 가꾸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백수아 기자 qortndk0203@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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