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기침체 이후 군산을 가다

지난 2017년 수주 위축 등의 조선업 전망 악화가 지속되며 군산에 소재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를 맞이했다. 그러던 중 최근 대형선박에 대한 수주 확대로 5년간 중단됐던 군산조선소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재가동을 시작했다. 전북대신문이 조선업 재가동 이후의 군산을 찾아가 근로자와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여는 말>

햇볕이 유난히 따사로웠던 날이었지만 군산 시내에서는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공단에 방문하기 위해 탑승한 택시에서 택시기사 ㄱ씨와 지역 상황에 대한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서해안이 가까워지고, 자연스레 조선소라는 낱말이 등장하자마자 ㄱ씨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웠다.

“5년 전은 끔찍했죠. 조선소도 닫고, 한국GM 공장도 철수한 마당에 군산의 경기가 폭삭 가라앉았어요. 너무 큰 파급력 덕분에 지금까지도 여파가 상당해요.” 그의 말대로 조선소와 GM 공장이 철수했을 당시 군산의 경제위기는 지역 언론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화두에 올랐다. 정치·경제 각계각층에서 지역 경제 붕괴의 우려를 표했고 매체들은 앞다퉈 군산 경제에 대한 암울한 보도를 쏟아냈다.

조선소가 위치한 공업지대와 가까워지자 ‘군산 현대중공업 재가동을 환영합니다’와 같은 현수막이 보였다. 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가동을 멈추고 있던 군산조선소가 가동 중지 이후 5년 만인 지난해 10월, 선박용 블록을 연간 10만t가량 제작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재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선소가 전면 재가동 된 것은 아니었다. 조선소 가동 중단 전, 군산조선소에서는 완전한 선박을 자체 건조했으나 현재는 선박의 기반이 되는 블록만을 생산한다. 블록을 제조해 울산의 현대조선소에 납품하면 군산조선소의 역할은 끝이다. 완전한 배를 수주하는 조선소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군산조선소에서 선박을 완전하게 제조하려면 크고 작은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주변 기업이 필요 자재를 생산하고 납품하면서 조선소와 상생하게 된다. 이를 통해 일자리 역시 배로 창출돼 경제가 더 활발히 순환한다. 조선소의 영향력에 의해 다양한 주체가 유기적으로 엮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군산조선소가 부분 재가동되는 것으로 결정됐고 그 때문인지 조선소 주변에 감도는 분위기는 활기보단 차가움에 가까웠다. 

적막함이 감도는 조선소에서 발걸음을 옮겨 공단에서 가까운 원룸촌으로 향했다. 주민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인근 상가의 식당과 가게 또한 한가해 보였다. 원룸촌 근처에서 부동산 사무소를 운영 중인 공인중개사 ㄴ씨는 “이전보다 방이 어느 정도 차긴 했지만, 조선소 직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그래도 혹시 조선소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동네를 좀 더 살폈다. 마침 부동산 사무소 가까이에서 전직 군산조선소 관리자 김상수(군산시·64세) 씨가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현장 근로자부터 관리직까지 여러 직책을 맡으며 우리나라의 조선업계의 실정을 잘 알고 있었다. 김상수 씨는 “지난 1990년대부터 삼성, 대우 등 여러 곳에서 근무했어요. 조선업이 불황을 맞자 퇴직하고 분식집을 차리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렴한 인건비를 밀어붙인 중국 때문에 수주가 우리 나라에 오지 않아 조선업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과 복지마저 열악해져 현재는 인력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조선소 근로자 자녀의 학비를 회사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등의 혜택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죠. 또 요즘에는 조선업과 같거나 그 이상의 임금을 받으면서 업무 강도는 훨씬 낮은, 그런 직업이 많아졌어요. 안 그래도 업무 강도가 험난하기로 알려진 조선업인데, 누가 이 업계에 뛰어들고 싶겠어요. 조선소가 문을 닫았을 당시 떠났던 직원 중 10~20%만이 복귀하는 것 같아요.”

군산에서 만난 시민은 현재 군산조선소에서 선박 블록만 생산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상수 씨 역시 “블록 제조는 완전한 선박을 건조하는 작업에 비해 인력의 3분의 1도 안 돼, 가동되는 공장도 적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지 않다”라며 아쉬워했다. 

전북도청 주력산업과 조선산업팀은 군산조선소가 재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당장 선박 건조는 하지 못하는 상태며 블록 생산을 우선 집중적으로 맡는다고 설명했다. 이후 인력을 점진적으로 증원 채용해 올해까지 선박 블록 10만t을 생산하고, 최종적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첫 번째 목표인 블록 10만t 생산을 위해서는 1천명이 필요한데, 현재 약 700명이 채용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박 수주가 증가해 3~4년 정도 작업해야 할 물량이 이미 확보된 상태라고 말했다. 

전북도청은 조선업 인력난 해결을 위해 올해부터 전북 조선업 도약센터(이하 도약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서비스와 취업지원, 직업훈련 등 구직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도약센터 취업지원 연계서비스 참여 후 조선업 관련 기업체 취업자를 대상으로 지원금 역시 지급하고 있다. 또한 이전에 3년 이상의 조선업 근무 경험이 있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조선업 관련 기업에 취업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숙련기술자 기술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군산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5년 만에 재가동된 조선소에 많은 기대를 표했다. 김진(군산시·44세) 씨는 “지금보다 더 힘든 시기도 견뎠다”며 “현재의 어려움이 새로운 군산으로 나가는 과도기였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박찬재 기자 cj@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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