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면대 없는 욕실  / 이 시 우  안양예고 1

 

중학교 때 살았던

부천 우리 집 욕실엔

세면대가 없어서

머리 감을 때마다

더 깊이 허리를 숙여야 했지

윗옷 적시지 않으려면

더 바싹

고개 조아려야 했지

 

일흔 넘은 할아버지는

머리 감을 때마다

러닝셔츠 흥건해졌고

출근 준비하던 엄마는

몇 번씩 살구색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살구비누 빠뜨리곤 했지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유연한

허리를 가진 소년

이마가 타일 바닥에 닿아도

그대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

물 한 방울 체육복에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머리를 감곤 했지

 

엄마는

그런 욕실을 속상해했지만

그런 욕실을 미안해했지만

 

그러나 엄마가 모르는 비밀 하나

 

 

나는 때때로

세면대 없는 욕실에서

혼자 물구나무 서곤 했지

세면대가 없어서

내 다리는 아무 곳에도

부딪히지 않았지

살구나무처럼

뿌리에 물을 주고

곧게 곧게

다리를 뻗곤 했지

 

그렇게 내 뿌리는

힘이 세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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