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전북대신문 학술문학상 당선작]

정옥(貞玉)이 / 최명희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4학년)

 

개교 19주년 기념 제16회 학예상 소설 당선작
제380호 1971년 12월 31일 금요일

 

 

정옥이는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가래가 걸린 것처럼, 내 목이 덩클거렸다.

카아.ㅡ

시원스럽게 뱉어버리면 무엇인가 좀 뚫린 것도 같았다.

방바닥에 놓인 부채를 집어 들었다 무슨 성경 전문서점에서 나온 선전용 부채는 이미 아주 낡아서 끝이 너풀거리고, 부칠 때마다 털럭, 털럭 소리를 냈다.

ㅡ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지시하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정옥이는 갑자기, 외치듯 큰소리로 창세기를 외웠다.

그녀의 몸에서 쿡쿡 땀내가 찔려왔다.

그녀는 처음에는 흰 것이었을 테지만 누렇게 땀에 전 런닝셔츠를, 그나마 여기저기 뚫어진 것을 대강 실로 훔쳐 매어 입고, 어깨를 우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 며칠 사이, 눈에 뜨이게 홀쭉해져 있었다.

「번제를 드리러 갈 때, 아브라함이 그랬잖아………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응? 그 말이…나는 가슴에 맺혀. 남아있을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응?…… 차라리 나도 한 마리 나귀나 됐을 것을……」

나는 무엇인가 상식적인 말로 그녀를 위로하려 했으나, 그것은 가슴에 얹혀버리고 말았다.

「너 아브라함, 알지?」

「응.」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백 세 때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 아내 사래가 구십 세 때……아들을 낳았어. 알지? 응?」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열에 떠 있었다. 원래 가늘고 빛이 없는 두 눈은, 두꺼운 눈 뚜껑에 가려 오목하게 들어가 있던 것이 휭하니 드러나 보이고, 그 눈에 빨간 핏기가 돌아 희부옇게 뜬 얼굴을 더욱 초췌하게 보이게 했다.

나는 무엇인가 최후로 그녀에게 할 수 있는 한마디 말을 정리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머릿속만 멍멍할 따름이었다.

갑자기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정옥이가 별안간, 습기 찬 맨방바닥에서 아랫도리를 내놓고 잠든 어린아이를 누가 채가기나 하는 것처럼 숨 막히게 끌어안고 도리질을 하고 있었다.

「정옥아ㅡ」

나는 아이를 빼내려고 했다.

 

그녀의 행동은 거의 난폭한 것이었다. 온통 핏기가 뻘겋게 오른 아이의 작은 얼굴은 좁쌀같이 내 돋은 땀띠로 더욱 빨갛게 보였다. 아이는, 머릿속까지 힘줄이 솟아 뻗어 나가게 더욱 울어 젖혔다. 아이는, 머릿속, 이마, 목 언저리, 팔다리 할 것 없이, 온통 모기가 물어 독이 오른 것을, 어찌나 긁어대고 거기다 약도 발라주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어서 진물이 나고 곯아 터진 자리 투성이였다.

한참 만에야 아이는 흑, 흑 하면 울음을 멈추고, 정옥이는 멍하니 천정을 바라다보았다.

이번 장마에 찢어진 천정이 축 늘어져, 쥐 오줌 냄새와 곰광내를 풍겼다

「내가 지옥에 가려고, 이게 무슨 생각일까……나는 아직도 은혜가 모자란다. 이러는 게 아니여. 내가 이러는 게 아니여. 거역하는 게 아니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라! 아버지이ㅡ」

정옥이는 두 손을 부르쥐고 고개를 방바닥에 떨어뜨리며 비통한 한숨을 토했다.

「어어마, 어어마,」

아이가 엎드린 정옥이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흔든다. 그리고 엄마 얼굴을 제 쪽으로 보게 하려고 자꾸만 엄마를 부른다.

「이삭아!」

정옥이가 아이 이름을 짧게 부르더니, 훅하고 숨이 막혀버린다.

……이삭……? 나는 흠칫 놀랐다.

그 이름을 지었다는 말도 들은 일일이 없었거니와, 아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처음 듣기 때문이었다.

「편지 왔니?」

이 무슨 쓸데없는 질문이란 말인가

그러나 여태껏 여나믄 달씩「아가」로 불리다가 느닷없이 아이 이름이 불린 것이 편지와 아무 관계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까.

정옥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사람은………」

정옥이는 그 말을 하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인제, 편지는 안 와……아주…」

눈을 똑바로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알고 있었어……언제부터…」

그녀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나는 결혼 당시부터 그녀에게 느끼고 있던 일말의 불행한 예감이 들어맞은 것 같아 어찔하였다.

「안 와!」

한참 후에 그녀는 나직하게, 실 가닥 같이 갈라진 음성으로

「제대해도, 나한테는 안 와.」

했다. 그 「안 온다.」는 것에 대한 그녀의 집요한 생각이, 오늘 그녀가 내게 말한 결심을 시키는데 큰 작용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남편은, 결혼하고 넉 달 만엔가 입대했다. 이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시댁에서는 일절 그녀를 상관하지 않았다. 결혼 당시부터 정옥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탓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친정어머니 눈을 피하여 아버지의 근무처로 몰래 찾아가 몇 푼씩 타다가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편지는 오지 않았다. 겨우겨우 견디던 끝에 하루는 드디어 시골 시댁에 찾아갔다. 자기를 탐탁지 않게 맞이하는 시어머니에게 공연히 주눅이 들린 정옥이는 더듬거리면서, 어째, 통 편지도 안 오고, 벌써 몇 달짼데 소식 한 장 없다고 하자, 시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마 부대를 옮기고 훈련이 고되고 해서 그러겠지, 하더라고 했다.

정말 그러려니 싶어 하룻밤 묵은 뒤 바로 떠날 차비를 챙기고 막 방문을 나서려 할 때, 책상 위에 무슨 두툼하고 커다란 누런 봉투가 있어 무심코 드려다 보았더니, 남편이 시댁으로 꼬박꼬박 보낸 군사우편 뭉치가 들어 있었다.

왠지 설움이 북받쳐 그냥 돌아서는데 철없는 어린 시누이는, 아이를 담은 정옥이의 배를 쿡쿡 찔러보며 끼륵끼륵 웃고 마당에서 소 여물통을 나르던 시어머니가 무슨 부정 탄 짐승 바라보듯 눈을 희뜩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 무서워 단걸음에 뛰어나와 버스를 탔노라 했었다. 그때 그 말을 내게 하던 정옥이 얼굴,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고 마음에 맺힌 설움이 있는 것도 아닌, 한없이 불쌍하게만 보이던 그 멍한 얼굴이 흰 옥양목처럼 휘감아 왔다.

그때 그녀는,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몰래 베껴 온 남편 주소를 몇 번이나 드려다 보며, 집에 닿자마자 아주 긴 편지를 써서 부쳤는데 아무 소식도 오지 않고 말았다. 아이를 낳은 다음 날, 항렬이 승자(勝字)라면서 아이 아버지에게 무엇이라 이름을 지으면 좋겠냐고, 아들이라고, 또 긴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여나무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의 이름은 오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지었어? 애기 이름……」

「목사님이」

그녀는 혀끝으로 말을 밀어냈다.

「목사?」

나는, 본 일도 없는 그 목사에 대하여 미묘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조그만 사건 때문이었다.

한번은 아이가 몹시 열에 시달리며 무엇에 체했는지 밤새도록 설사를 했다.

이튿날은 주일(主日)이었지만, 아이는 숨을 할딱할딱 몰아쉬고, 끊임없이 설사를 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생각하다가 집에서 찬송과 기도를 올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날 아이의 등에 붉은 종기가 돋아났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 시간마다 놀랍게 크는 것 같더니, 뾰족 솟아오른 곳에 누런 고름이 잡히고 그 주위가 단단하게 몽쳐 자리를 잡고는 몹시도 아이를 괴롭혔다. 반듯하게 누워 있을 수 없는 아이는 말할 수 없이 보채고, 칭얼거리고 그래서 엎드려 놓으면 숨을 헐떡이며 얼굴이 충혈되고 베개에 침을 흥건하게 흘렸다. 정옥이는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고 또 했다

ㅡ나는 진노하는 하나님이니 나 이외에 다른 것을 섬기지 말라 하시지 않았던가, 주일을 지키고 예배드리는 것보다 아이를 더 소중히 여긴 벌이요, 기도하시오. 회개하시오, 참회하는 마음으로 눈물로 철야기도를 하시오……

그녀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찾아간 그녀 교회의 목사는 정옥이 모자를 놓고 준엄한 음성으로 꾸짖고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그 징벌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일일이 찾아 짚어가며 읽어주고 책망하였다.

그녀는, 설사하는 아이를 업고, 아이의 곪은 종기가 나을 때까지 계속하겠다며 교회에서 밤마다 철야기도를 했다.

닷새째 되는 날, 희부연 얼굴에 우묵한 두 눈만 빨간 실지렁이 같은 핏줄이 엉켜, 길에서 만난 내게 말했다

「내가 나뻐, 내가 지옥 갈 것을 우리 애기가 당허다니. 나는 속죄를 할 일이 있어. 우리 애기만 낫게 해주신다면, 나는, 애굽으로 팔려가는 노예가 돼도 좋아. 내가 잘못했어.」

정옥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열에 뜬 음성으로 내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자기는 지금 닷새째 철야기도를 하려 간다고 했다.

시(市)의 변두리에 새로 생긴 그녀의 교회는 시내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밤이면, 회개를 위하여 모여든 사람들이, 교회 마룻바닥을 두드리며, 아바지이ㅡ를 부르는, 마친 원한 맺힌 것 같은 소리가 온 교회를 울리고 인근 동네를 울렸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서 있으면서 온몸에 부글부글 피어오르는 까닭 모르는 분노 때문에 떨었다.

「애기, 병원에는 가 봤냐?」

「아니.」

「약도?」

「나는 속죄를 해야 돼. 그 길만이 애기가 사는 것이여」

「미친 것!」

그녀의 눈에 슨 아무것도 비치지 않고, 걸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의 어깨너머, 더 먼 쪽, 교회의 첨탑 보다도 아득한 쪽, 보이지 않는 더 멀고 먼 쪽에 엉겨있는 검은 구름 같은 공포가 가련한 그녀의 육신과 혼을 덮어씌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날 저녁, 좋은 회사의 페니실린 한곽, 설사에 좋다는 약과 해열제를, 아이의 증세를 잘 말하고 조제 받아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눈 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불그림자처럼 번뜩이며 어른거렸다.

그녀는 그 일후로 마력에 이끌린 것처럼 거의 정신없이 교회에 매달렸다 길을 오갈 때, 찬송가를 흥얼거리거나 성경 구절을 중얼거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아, 좀 나와 봐아.ㅡ」

갑자기 마당에서 주인 여자의 쨍쨍하고 찢어지는 것 같은 음성이 방안으로 튀어들어 왔다.

「방구석에 쳐백혀서 중 염불허듯 성경책만 읽지 말고 바깥에 좀 나와보란 말이야.ㅡ」

내가 힐끗 정옥이를 쳐다보자.

「사탄이야」

했다. 나가보라는 시늉으로 옆구리를 찌르자 좀 움찔하더니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 요강 못 치우겠어? 팍 뚜드려 깨던 지기 전에.ㅡ」

여자의 음성은 금방 누구를 할퀴어 낼 것 같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는 자는 영광을 얻으리라」

정옥이는 내게 거의 들리지 않게 기도하며 고개를 수그렸다.

내가 대신 밖으로 나갔다.

주인 여자는 깡마르고 큰 키였다. 여자는 허리에 양손을 얹고 정옥이 방을 향해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왜요? 새댁이 뭐 잘못했어요?」

여자는 나를 너는 무엇이냐는 듯 위아래로 날카롭게 훑어보았다.

「친구예요. 그런데………무슨…?」

그 여자는 손가락을 빳빳이 세워, 마당의 구석들, 빨랫줄, 샘 바닥을 가리켰다.

「아니, 꼭 이렇게 해야만이 천당을 가는 거야? 아, 좀 나와보란 말이야 즈집 허고 우리 집허고 단 두 집 사는 것도 아니고, 여러 집이 어울려 살문서로 조심해서 깨끗이 해야지. 이게 뭐라는 거야, 지금. 응? 또오ㅡ여자들만 살어? 남자들이 있으나 손님이 오나, 대문 맞바라지 샘 바닥에다 넘치게 담아서 요강을 버텨 놓고 치울 생각은 꿈에도 않는구만. 응?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야ㅡ응?」

주인여자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방안에서 정옥이가 느릿느릿하고 퉁퉁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ㅡ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주인여자의 팽팽하고 카랑거리는 음성에 끼어드는 정옥이의 노랫소리는 여자를 더욱 부화통 터지게 한 것 같았다.

「비러먹을 놈의 여편네!」

여자의 입에 침이 하나 가득 고여 오르고 입술에는 거품이 허옇게 끈적였다.

 

정옥이는 똥이 담긴 것이건 오줌이 담긴 것이건 요강을 샘에 내놓으면 비울 줄도 모르고 사흘 나흘씩 간다는 것이다. 빨래도 쉰내가 푹푹 나는 여름 빨래며 아기 기저귀들을 대야에 담가 놓기만 할 뿐, 같이 사는 아낙네들이 성화를 대야만 겨우 흔들흔들 빠는 시늉만 해서, 지르르 물이 흐르는 것을 그대로 줄에 널고는 미친년처럼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에 가는 것이겠지. 또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날이면 날마다 이른 새벽 날도 새기 전에 어느 교회에서든지 첫 종을 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그때부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몇 번씩이나, 날이 훤히 밝도록 부르고 큰소리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던게 요 며칠 사이에는 숫제 새벽이고 깊은 밤중이고 한낮이고, 집에 있기만 하면 아바지이 아바지이ㅡ하고 외치는 기도소리가 끊일 새가 없으니, 아마 저 예편네는 교회귀신이 들린게라고 숨도 쉬지 않말을 쏟아냈다.

●정옥이의 노랫소리나 성경 읽는 소리나 기도 소리가, 다만 그 음성만이라도 듣는 사람에게 즐거운 기분을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은 나도 잘 알았다

그러나, 요 며칠 사이………라고 주연여자는 말했다………

며칠 전 그녀가 깊은 밤중 나를 방문하여, 심하게 다친 것처럼 아픈 숨소리를 내며 토막토막 여러 이야기를 괴로워하면서 말했지.

……목사님이, 우리 애기……혼자 키우기도 힘들 테니……나는 아이가 없어서 늘, ……우리……키워주시겠다고……양자……양자로 주라고……우리 교회 그 집사님, 왜 너도 알지, 그 집사님이 또 내게 몇 번이나 말씀하시드라……하나님의 뜻일 거라고……하나님의 선택 하심을 입은 아들이라고……그래, 우리 애기 낳을 때, 어떻게 낳았는지, 너는 알지? ……너는……목사님이 잘 키워서 나중에 훌륭한 목자(牧者)로 길러 주신대,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그런데 경림아, 나…나 말이야, 그 말을 듣고는……… 내가 지옥갈라고…… 지옥 유활불에 던 지우려고 내가 감히 거역을……… 그런 생각만이라도…… 나는 믿음이 약한 탓이지……… 그치만 경림아, 경림아, 집사님 말을 듣고………오오,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 죄인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그녀는 더듬거리며, 무엇인가 고백 되지 않은 깊은 어둠과 고통 속에서 홀로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으면서 가공(可恐)할 상상 때문에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마음 놓고 괴로워하지도 못하고, 방 속에서 나오기조차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손은 무서운 위력을 가진 거대한 것으로서 그녀는 감히 항거할 아무런 힘도 없는 불안하고 초라한 존재로 등을 구부리고 방 한쪽 구석에 피하여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속은 그런 자기 모습에 대한 고통스러운 반항으로 단단히 뭉쳐져 있었다.

「원, 아들 아니라 더한 걸 나았대도 소박맞기 딱 좋지. 칠푼이 같은 예펜네!」

주인여자는 뱉어내듯 말했다.

「아무리…… 무슨 그런 말씀을…」

주인여자는 힐끗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좀 머쓱한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그러다, 한 김에 한 말을 마저 해버리겠다는 듯 허리춤을 추겼다.

ㅡ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정옥이는 거의 소리를 지른다는 편이 옳았다.

ㅡ여호와께서 가라사대……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거기서 그를……번제로 드리라……거기서………거기서……그를…번제로…

나는 가슴이 우울하게 찢기는 소리를 들었다.

주인 여자는 숨을 몰아쉬고는

「저 여자도 고등학교 댕겼다문서?」

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학교 때는 참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어요」

「그래요오?」

여자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듯 입을 비쭉했다. 자기는 보통학교 문전에도 가지 않았지만, 저렇게 의젓잖게 하고 살아본 일은 없다고 했다.

정옥이는 머리 한 번도 제대로 빗어본 일이 없고, 옷이라고 모조리 자루처럼 훌렁거리거나 꼭 끼이게 적이서 참, 옷 같은 것 가지고 사람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우선 누구라도 정옥이 차림을 보면 천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치맛단이 뜯이지면, 옷핀이 뻔덕뻔덕하게 비치도록 찔러 입거나, 혹은 그대로 돌아다니고, 겨울에 바지 같은 것은 엉덩이가 몇 치씩 타졌어도 꿰매 입을 줄도 모르고 그냥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도 매양 교회에만 가서 살고, 자식이라고 하나뿐인 것은 이제 나이 스물, 한참 대에 그 주체를 못 하고 질질 맨다고 했다 옷은 싼 옷이라도 단정하게 입어야지 그렇게 구호물자 나부랭이를 뀌고 다니는 것은 스스로 사서 궁상을 떠는 것이라 했다.

사실 나도 옷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생각한 일이 있었다.

정옥이는 구호물자 골목이라는 불리는 데를 자주 드나들었다.

남편이 군에 입대하고 얼마 만에 혼수 옷을 그 골목에 내다 팔고 돌아오는 것을 만났다.

결혼하던 날, 나도 본 일이 있는데 외할머니가, 남의 에미 밑에서 불행하게 큰 외손녀 시집가는데 본견 옷이라도 한 벌 해줘야 한다고 벼르다가 마음먹고 일류 바느질 집에서 만들었다는 붉은 치마와 초록 저고리를 팔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그런 특수한 옷은 누가 사주는 사람이 없어서 값을 제대로 쳐줄 수가 없다고 안 사겠다는 것을 애원하여 팔백오십 원이나 받았다고, 그거나마 그 집에서 사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 하지 않았느냐고, 다행스러워했다.

「고운 거 입고 있으며 뭐 헌다냐… 누가 볼 사람도 없고, 나야 아무것나 입지 머.」하면서 팔에 안고 있는 것을 내게 자랑스레 비춰 주었다.

「뭐니?」

옷을 팔고, 시청 모퉁이를 돌아오는데 고서점(古書店)에 욕심나는 책이 하도 많고, 싸서, 오백 원 어치를 샀다고 했다. 내가 맥이 탁 풀려 식량은 있느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쳐야 돼. 그래서 백 원은 미리 제해놓고……이백오십 원이나 남었어. 나는 그거면 일주일은 살어. 목사님 설교하시는데 땀나니까 타올 한 장 사드릴라고…」

「책은 무슨, 미친………무슨 살 일 났다고 책은 사……」

목이 메기도 하고, 무엇인지 억울하기도 하고, 도서관에 늦게까지 같이 남아 인수분해를 풀던 여학교 때 일이 되살아나기도 하고………정다운 정옥이가 어찌 이리되었을까 싶기도 해서, 목에 무슨 덩어리가 뜨겁게 치받치는 것을 참기 어려웠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가끔 그녀의 집에 들러보면 쓸만한 것은 자꾸 내다 팔고 그 대신 돌아오는 길에, 아이 준다고 엿이나 빵이나, 책, 엽서 같은 것을 몽땅 사오곤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아끼던 문학 전집류, 사상 전집류들은 모조리 내다 팔아버렸다.

세상의 지식은 모두 사탄이라 하여 그 대신, 마태복음 연구, 칼빈연구등 전문적인 성경연구서적을 사들였다.

그녀는 그렇게 정신없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마치, 지남철에 매달린 한낱 쇠붙이처럼 교회에 거의 필사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은 직후였다.

특히나, 이것은 내 직감에 불과하지만, 그 은테안경을 쓰고 정갈하게 머리를 갈라붙여 뒤로 틀어 올린, 어쩐지 계산이 빨라 보이는 눈을 가진 여집사는 어떤 묘한 힘으로 정옥이를 움켜쥐고 있어서, 손톱만 한 일에서도 그 집사를 거역하지 못하고 맹종하는 것 같았다.

그 집사는 정옥이가 아이를 낳은 뒤, 교회에 데리고 나가면서, 여러 교인에게 권유하여 쌀도 걷어주고 입다 남은 헌 것 같은 것을 모아다 주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정옥이는 지독하게 외롭게 아이를 낳았다.

지난여름, 무덥고 꾼적꾼적한 습기로 덮인 깊은 밤에, 성경을 베고 아들을 낳았다.

키가 유난히 작은 데다가 배만 둥그렇게 불러, 다리를 벌리고 어기적거리면서 얼굴이 띵띵 부어가지고 다닐 때, 그녀는 내게, 임신하고 오 개월이 지나면 배 띠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니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무안하여, 처녀인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팩 쏘아붙이자 기죽은 얼굴을 힘없이 돌리며 자기는 아무한테도 그런 것을 물을 데가 없다고 했다.

정작 아이를 낳던 날, 우리 집에 와서는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다고 하면서, 깎지도 않은 참외를 아귀아귀 먹었다.

부른 배를 안고, 부은 다리를 벌리고 앉아 아무 표정 없이 참외를 먹는 한없이 백치스럽게 보이는 정옥이가 그처럼 불쌍하게 느껴진 일도 없었다

「몸조리 잘해라. 저런…… 준비들은 다 했니?」

어머니가 얼음 탄 쥬스를 가져다주면서 정옥이에게 묻자, 그녀는 참외가 참 달다고 씨까지 모두 우물우물 삼키더니

「아무것도 나는 몰라요. 뭘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고요.」

하면서 입술을 닦고 마당의 꽃 무더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녁 바람이 불고 좀 선선해졌을 때 정옥이 옆방 중학생이 약도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 왔다.

내가 갔을 때, 정옥이는 빈방에서 울고 있었다.

길고 느릿느릿한 한없이 지루하게 늘어 메는 울음소리였다.

주인 여자는 방문을 열어보더니

「아직도 멀었어. 초산은 사흘도 가고 나흘도 가. 아아직 멀었어.」

하면서 무슨 구경이나 하고 난 사람처럼 문을 닫고 가버렸다.

중학생을 불러 정옥이 친정에 보냈다. 급한 손님이 오셔서 조금 있다 가겠노라고 전갈이 왔다.

정옥이가 울면서 소리를 지르다 다시 보냈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전갈이 왔다 나는 주인여자에게 갔다.

마침 놀러 와 있던 은테안경의 여자가 성경을 들고 정옥이에게 가까이 갔다

「새댁, 고통스러우면 이 성경을 베고 하나님을 불러보시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으든 고통을 지고 가셨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시우. 믿음의 힘으로 순산할게요.」

잠시 단정히 앉아 기도를 외우던 집사는 찬송가를 불러주었다.

정옥이는 울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정옥이 친정으로 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 부드러워 보이는 웃음을 띄웠다.

「어머니께서 미리 좀 가보시쟎구… 정옥이 지까짓 게 뭘 알겠이요…… 혼자서………남편도 없이……」

<남편도 없이>에 공연히 목이 맺히는데 정옥이 어머니 얼굴에서 웃음이 걷히더니 비소 섞인 소리로 날캄하게 쏘았다.

「흥, 누가 저보고 시집도 가기 전부터 지랄허구 댕기랬나? 이번 일만 해도 그렇지. 군대 간 신랑을 두고 지가 어떻게 자식까지 낳서 혼자 맥여 키운다는 것이여, 도대체 아무 계산도 없는 짓거리지, 누구를 못 살게 허겠다는 십뽀야. 유산시키라고 몇 번이나 일러도 무슨 놈의 똥고집이여, 원, 지가 낳서 키운댔으니 저 알아서 허겠지. 서방도 없는데 애기 낳는다고 불쌍헐 것 하나도 없지 머.」

나는 화끈해져 그냥 거리로 나와 한동안 돌아다녔다.

하기야 그녀는, 참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에 서둘러 일찍 결혼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정옥이는 늘 사람을 그리워했다.

언제나 영아원의 아이처럼 주려있고, 음울하고 간절한 소망 때문에 말이 없는 불안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조금만 냉정하다든지 무관심하다든지 근엄한 사람과 마주 서면 눈에 보이게 주눅이 들려 몸 둘 바를 모르고 그럴수록 얼굴은 두껍게 부어오르곤 하였다.

그리고, 조금만 다정하게 하면……그러면 누구를 막론하고, 하급생이거나 심지어 철없는 어린것에게까지도 마구 팔에 얼굴을 부비고 어리광을 했다. 같은 친구들끼리는 그 작은 키가 대롱대롱 매달려 가다시피 팔을 꼭 끼고 온몸을 의지하고 그랬다.

언젠가 자기 이모의 손가락을 자근자근 물면서 그지없이 좋아하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말없이, 멍한 눈으로.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그러다가 잘못해서였든지 팔을 조금 밀치거나 도사리면, 어느 샌 지 몸을 오그리고 저만치 한쪽으로 비켜났다. 그럴 때, 그녀의 얼굴은 한없이 쓸쓸하고 비굴한, 그러면서도 먹먹한 것이었다.

우리를 지도하던 여학교 때 가사선생님은 졸업하기 직전에 내게 말했었다.

자기 자취집에 놀러 온 정옥이는 자고 가겠다고 했다. 그날 밤 자기는 한잠도 못 잤다. 같은 이불 속에서 잠이 든 정옥이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만지작 이다가 목을 감고 어찌나 파고드는지, 그런 느낌은 없었어야 옳지만, 이상하게 정옥이 손이 닿는 곳은 섬쩍하고 소름이 끼쳐 파충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등을 다독여 주었다. 정옥이는 목쉰 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며 파고들었다. 가사선생님은 머릿속이 아찔하여 잠결인 척 꾸미면서 세차게 밀쳐버렸다. 그랬더니 새우처럼 오그라지면서 이튿날 아침까지도 그렇게 꼼짝하지 않고 있더라고, 자기가 잘못한 것 같다고, 정옥이만 보면 사과를 하고 싶었는데, 자기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노라고 했다.

내가 정옥이의 그런 성격들을 충격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참 어처구니없는 이른 새벽이었다.

졸업하던 해, 벚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 예고도 없이 정옥이가 찾아왔다. 언제라고 미리 말하고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일찍이, 날이 새려면 아직도 한참이 남은 시각에 찾아왔기 때문에 나는 놀랐었다

정옥이는 이부자리가 그대로 펴져 있는 내방에 엉거주춤 앉더니, 얼이 빠진 사람처럼 천정만 바라보았다.

한참 후, 자기는 지금 산에서 온다고 했다.

「목소리가 참 좋아, 따뜻해. 그리고 손도…… 다…… 참 따뜻해.」

정옥이는 따뜻하다는 말을 몇 번인가 했다.

정옥이가 그를 어제 만난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그렇게 호의에 가득 차고 친절할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을 대하면 나는 왜 그렇게 정신이 아뜩해지는지 모르겠더라고, 정옥이는 말했다.

정옥이는 그의 친절에 감격했다.

그런데 그가 손을 잡았다.

울고 싶더라고 했다.

정옥이는 어려서 채 철이 들기 전에 지금 어머니가 친어머니인 줄 알고 있을 때, 밤이면 더듬거려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휙 뿌리치며 혀를 차고 돌아누워 버렸다.

몇 번이나 그런 밤이 계속되면서 밤이 되면 공연히 공포스러워지고 더욱더 미칠 듯이 어머니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조그만 주먹은 끈끈한 땀으로 외롭게 젖어 있었다.

정옥이는 어려서부터 무엇이나 끌어안기를 좋아하고, 살이 닿는 것을 말할 수 없이 좋아했다고 말했었다.

「참 따뜻해……」

정옥이는 제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그 남자에 대해 설명을 하려 했다.

내가, 막았다.

집으로 가라고 했다.

무서워서 싫다고 했다.

「남자는, 그 녀석은, 그래서……. 지금 어디 갔어? 즈집에 갔어?」

날카롭게 묻는 나를 겁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새벽이 밝자 먼저 산을 내려가고 자기는 뒤에 내려왔는데, 아무 데도 가지 못할 것 같아서 내게 왔다고 했다. 나는 내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으며

「아아,」

짧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 립스틱, 늬끼냐?」

정옥이는 내 책상 위에 놓인 립스틱 대가리를 들어 올려 제 입술에 바르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참 이쁘다, 응?」

나는 그녀가 간 뒤, 두 손가락 끝으로 립스틱을 집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었다.

한번은 거리에서 그 남자가 친구들과 어울려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가는 것을 정옥이가 만났다고 했다. 반가워서 아는 체를 하려 했더니,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바라보면 지나치더니,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같이 가던 한패가 와아.ㅡ 웃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두 명이 힐끗 뒤돌아보더라고 했다.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집에서는 동네 부끄럽다고 결혼을 서둘렀다

정옥이 어머니는 자기대로, 사람들에게 억울한 말을 들을 것을 계산하여 더욱 서둘렀다.

정옥이는 내 버려지듯 시집을 갔다.

ㅡ아아, 차라리 한 마리 나귀나 되었을 것을……

정옥이가 중얼거리던 말이 내 귀를 덮는다.

 

정옥이는 자기 아이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것은 어머니로서의 애정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절실하고 가련하고 외로운 애정이었다.

그녀가 아이를 낳은 이튿날, 어찌 되었나 궁금해서 정옥이 집에 갔을 때 마루도 없는 토방에 정옥이 고무신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밥은 먹었어?」

방 한 데 기운 삼베 홑이불을 덮고 성경을 밴 체 아이와 누워있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님이 끓여 주셨어……」

정옥이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하나님이 주셨어. 애기도 내 생명도 우리 엄만 나만 낳고 돌아 가셨잖어…… 하나님이…… 성경을 베서 살었어…… 하나님이 집사님을 보내 주셨어……」

정옥이는 중얼거리며,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 주여! 라고 했다. 그리고 집사님께도 감사합니다… 했다.

그 중년 집사는 그날 이후 자주 정옥이에게 들려 성경도 읽어주고, 부드러운 말도 해 주고 어루만져 주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정옥이의 눈에서는 묘한 광채가 있었다.

그녀의 주변, 혹은 세상의 뭇 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주 먼 쪽을 향한.

「그날 경림아, 우리는 둘이 같이 새로 태어났어 나는 사망의 음침한 잠속에서, 우리 애기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 애기는 하나님의 애기야. 영광의 종이야. 우리 애기는 목사님을 만들어야지. 그 외에는, 나는 소망이 없어.」

내 생각에는 자꾸만 그 은테 안경의 집사가 그렇게 설명해 준 것 같았다

은테 안경의 집사는, 발가락이 길쭉하고 키가 어머니 닮지 않고 훌씬하게 클 것을 암시하는 아이 다리를 이루 만져 보기도 하고, 좀 가무잡잡하면서도 건강한, 이마가 넓으며, 눈이 둥그렇고 까풀진, 모두 제 아버지 쪽을 닮은, 준수하게 생긴 머슴애를 유난히 귀여워하였다.

그리고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 집사가 창세기에 나오는 믿음의 조사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던 그들의 제사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정옥이는 집사에게 어린애처럼 붙어 앉아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행복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집사는 정옥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거나 다독거려 주었다.

그럴 때의 정옥이의 눈은 한없는 즐거움에 몽롱하였다.

주인 여자는 떠들다가 시장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가 버리고, 정옥이도 무엇을 하든지 아무 소리 없이 잠잠하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정옥이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툭 떨어뜨렸다.

아이는, 구호물자나마 다른 새 옷을 갈아 입혀 놓은 것이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품에 안은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에, 그리고 이마에, 몸에 입 맞추었다.

성례(聖禮)를 행하는 것처럼.

「이삭아…… 이삭아……」

그녀가 낮게 그의 아들을 부르는 음성이 절망으로 축축하였다.

ㅡ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을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정옥이는 울었다.

ㅡ내 아버지여 하니,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오오…….

정옥이는 크게 울었다.

「하나님이 믿음을 시험 하신다. 주여, 저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떨어뜨리지 마옵시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ㅡ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정옥이는 후들후들 떨었다.

옷을 갈아 입힌 것을 다시 벗겨 내고, 헌 라면 상자에서 다른 것을 하나 꺼내 이것저것 대보았다.

예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성스럽게 솔기를 손톱으로 눌러 펴기도 하고 구부러진 곳을 바르게 하면서 몇 번씩이나 만지작거렸다.

「땀띠약이나 한번 발라줘 볼걸…」

그녀는 아이의 땀띠 곪은 곳을 어루만졌다.

「우리 애기가 지금, 뭣이 먹고 싶으까……」

한참 만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말이나 할 줄 알어야지……」

은테 안경의 집사가 저녁 일곱 시에 이곳으로 오마고 했다 한다.

「주여, 주여,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정옥이는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안돼!」

나는 드디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정옥이는 소리도 내지 않고 울면서 잠잠히 아이에게 옷을 입혔다.

몸속에서 피가 화닥화닥 뛰었다.

왜. 모두, 왜, 모든 사람은, 정옥이에게서 모든 것을……단 한 가지 남은 것까지도 빼앗아가려 하는 것인가.

아이가, 내 어머니여, 할 때 정옥이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란 말인가.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걸 느꼈어.」

정옥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려서……어머니가 내 손을 뿌리친 때부터……나는……버림받을 운명이었는지도 몰라.」

<운명>이라는 그 흔한 말이 이때처럼 찌잉하니 내 속을 후벼 파 본 일은 없었다.

「나는 갈 곳이 없어 암만 봐도…… 교회만이 나를 거절하지 않아. 교회가 없어지면…… 나는 갈 곳이 없어 하나님의 뜻으로 애기를 주셨으니 바치라 하실 때 바쳐야지. 아브라함을 봐…… 나보다 오죽 더 했으니까… 그치만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를 버리지는 않으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믿음을 다만 시험 하시고는 이삭 대신에 번제드릴 수양 한 마릴 보내셨잖어……그 은혜를……」

「시끄럽다!」

나는 그녀의 말허리를 매몰차게 잘랐다.

은테안경 집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교회에서 버리면 갈 곳이 없어.」

정옥이는 낮게, 갈가리 갈라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집사는 몇 번이고 정옥이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겠지.

시험에 들면,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영원히, 그러나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의 사지에 아들을 바치면, 새댁은, 사라처럼 열국의 어미가 될 것이니……자, 신앙의 힘으로 굳건히 이기고……새댁이 키우는 것보다 목사님께서 키우시는 것이 훨씬 더… 새댁이 성경을 베고 아들을 낳은 거만 봐도……역시……

아아, 그러나 그것이 정옥이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아무 관계도, 티끌만치도 없는 것이다.

무형의 엄청난 존재에게 받을 추상적인 은혜보다, 품 안에 안 기우고 자기 몫으로 완벽한, 살이 닿는 아이를 위하여 고통을 받는 편이 훨씬 솔직하고 담대하지 않은가.

우리는 왜 무수한 허위에는 복종과 정렬로 자신을 바치고, 그 허위 중에 실로 희귀하게 빛나는 몇 개의 진실에는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을 억제하고 저항하는 것일까.

「늘 불안해. 나는 다른 거는 몰라도, 나를 버리려는 냄새는 잘 맡아. 나는 갈 데가 없잖어.」

「정옥아.」

나는 정옥이 손을 잡았다.

「우리 서로 정직하자. 인간이란 자기 내면의 순수한 욕구에 응해줘야 할 의무가 있지 않겠니? 우리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도. 왜 네가 갈 데가 없어?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다면 너는 어디로 가도 좋은 거야. 늬가 갈 곳이라고 믿는 그곳이야말로 너를 아무 곳으로 가지 못하게 묶어 놓아. 보이지 않는 것의 노예가 될 건 없어. 설령 아무 데도 너를 의지 못 해도, 그걸 그렇게 담대하게 혼자 살아. 버리려면 버리라고 해 두려워 말자. 응? 정옥아.」

정말 꼭 필요한 한마디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를 답답하게 했다.

정옥이는 내 손을 잡았다.

아프게 잡았다.

그리고 거의 들리지 않게 숨소리로 말했다.

「약속했단다. 이미, 하나님께 맹세하고…… 철야기도를 하고…… 약속했단다.」

정옥이의 음성은 이빨 사이에 물려 겨우겨우 밀려 나왔다.

「나는 무서워.」

「죽더라도 서서 죽자, 정옥아. 지금은 모른다. 아무도 아무것도, 그치만 네 속에서 부르는 소리에 너는 대답해야 헌단 말야.」

정옥이는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최후의 기적에 온 희망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가슴을 옥죄어오는 죄의식 때문에 괴로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가엾고 남루한 숨소리였다.

사람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상으로 일생을 불행하게 살며, 혹은 근거 없는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자기의 생에 가장 귀중한 것까지도, 우연히 뒤집은 카아드패를 떼듯이 결정짓고 마는 것일까.

더욱이 여자의 경우,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의지로 무엇인가 행하는 것보다 「무엇에 의하여」 자기를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땀으로 범벅진 얼굴을 들어 멍하니 마당을 내려다보는 정옥이의 눈은, 마치 지난 어느 날 이른 새벽, 산에서 왔노라고 나를 찾았던 날의 것과 너무도 같았다.

나는, 정옥이가, 아무것에도, 정말 아무것에도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것이라고는 가져 본 일이 없고, 누구에게도 소유되어 본 일도 없는 그녀는 어떻게 자기를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다만 정옥이의 빈 곳을 휘어잡은 한 존재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만일 정옥이의 소유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일지라도 모두 바치리라는 것도 잘 알았다.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지식이나, 단련된 이성 같은 것으로도 대항해 볼 수 없는, 보다 원시적인 한 세계는 훨씬 더 강한 행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녀도 결국, 스스로, 알거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원시적인 힘에게 먹혀들어가 버린 것이나 아닌가……

이성(理性)은 대개 이런 경우, 소득 없는 싸움에 피를 흘리고 심한 상처를 입어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린다.

「경림아ㅡ.」

눈을 들어 정옥이를 바라보았다.

「애기 이름이……이삭이야.」

그녀의 볼이 부어오르더니 툭 꺼지며, 목에 끅 끅 소리가 나게, 목에 굵은 핏줄이 퍼렇게 솟아나게 울었다

「정말로 나는 주기 싫어!」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정옥이와 아이의 얼굴을 덮고 벽을 타고 올라갔다.

방안이 그림자로 덮여 어두웠다.

문간에 은테 안경의 집사가 날카롭게 정갈한 눈으로 이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옥이가 오르르 떨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집사와 나와 정옥이와 아이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예리한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숨소리들이 칼날 같다.

아이가 별안간 자지러지게 울었다.

숨이 깔딱 넘어 갈 것처럼 울었다.

아이는 조그만 손으로 제 엄마 목을 감아 안고, 개구리같이 찰싹 붙어 안겼다.

정옥이는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끌어안고, 공포에 질린 입술을 이빨로 악물고 벽 구석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끝>

 

최명희 작가는 1947년 10월10일, 전북 전주시에서 태어나 우리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면서 탁월한 감성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단편소설 '정옥이'로 1971년 제16회 전북대신문 학예상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이후 1980년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1981년에는 동아일보가 창간 60주년 기념으로 공모한 장편소설 모집에 ‘혼불’(제1부)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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