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원 | 강사 (인문대·국어국문)
신지원 | 강사 (인문대·국어국문)

MBTI식으로 난 대문자 N이다. 대단한 상상력 탓에 가끔은 대화 중 혼자 딴 세계로 갈 때도 있다. 물론 들키지 않는다. 그만큼 스스로 사회화가 아주 잘 됐고 내 나름대로 배려심이 깊어 오해 살 일을 덜 만든다고 여긴다.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사건을 추적해 보면 어릴 때로 돌아간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가 내게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이상한 거 없냐는 물음에 친구의 손을 유심히 살폈다. 손톱에 하얀 점이 구름처럼 찍혀 있었다. 친구는 그것의 의미를 말했다. “이거 생기면 새 옷 받는대. 이게 ‘옷 복’의 징조야.” 친구가 새 옷을 받았는지보다는 옷 복이라는 말과 의미가 신기해서 계속 기억했었다.

어느 날 내 손톱에도 흰점이 생겼다. 친구 것보다 희미한 것이었지만 신기해서 당장 엄마에게 알렸다. “엄마, 이거 봐요. 흰 반점 생겼어요! 신기하죠?” 엄마는 그것이 뭐 대수냐는 표정을 지으셨다. “엄마, 이거 몰라요? 옷 복이라던데요?.”

문제는 며칠 뒤에 생겼다. 엄마가 새 옷을 선물해 주신 것이었다. 당장은 반가웠지만 난 크게 당황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계절마다 새 옷을 사들일 형편이 아니었다. 챙겨야 할 것이 많은 대학생 큰오빠와 고등학생인 작은오빠, 사춘기가 한창인 언니가 있었고 아빠만 일을 하셨기 때문에 엄마의 살림살이는 늘 빠듯했다. 아무리 막내였어도 부모님의 고생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떼를 쓰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었다.

엄마는 새 옷을 선물해 주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새 옷을 입고 싶어서 없는 얘기를 지어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는 엄마의 마음, 그러니까 미안함, 안타까움, 안쓰러움, 자책 등이 한데 섞인 그 마음을 한순간에 알아차렸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무언가 죄책감이 들었다.

나중에야 손톱 반점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흔한 증상이란 것, 옷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겐 잊히지 않는 일이다. 당시 엄마가 느꼈을 마음을 여전히 상상할 수 있다. 한 번의 꾸지람 없이 미안하다고 하셨던 것도 잊을 수 없다. 잘못한 것 없이 엄마에게 죄송한 느낌을 오래도록 잊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대화 너머에 있는 상대의 마음을 더 세심하게 살피려는,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박사는 한 포럼에서 ‘호모심비우스(Homo symbious)’라는 인간상을 제안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공생하는 인간’,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호모심비우스라는 인간 상처럼 우리는 결코 혼자 살 수 없고 우리가 만들고 누리는 문명 또한 한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는 이 시대에 추구해야 할 너무나 당연한 태도이다. 그 배려심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아주 작은 순간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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