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소통에 있어 상대와 생각하는 바가 다를 때, ‘온도 차가 있다’라는 표현을 쓴다. 신문 정치면 사회면에서 양자 간 정책적 의견 교환이나 협의 과정에서 어긋남을 표현 할 때도 자주 다루는 타이틀이다. 정상 ‘온도’를 유지하는 것, 혹은 대상 또는 상대가 있을 때 서로 같은 온도를 느끼는 것 은, 중의적 의미는 물론 협의 광의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과 나의 온도’를 되돌아볼 때이다. 지 금부터다. 지금 머릿속에 ‘나의 당신이 누구?’ 혹은 개인에 따라 임의의 특정인을 ‘당신’이라는 위치에 놓아 볼 것이다. 당연하게도 대부분 그 대상에 사람을 놓았을 테지만, 결론부 터 말하면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말할 이 대상에 우 리 마음가짐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하고 그 대상을 실제 내 옆에 존재하는 나의 ‘당신’처럼 내 체온을 유지하듯 ‘당신’ 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주체적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 래야만 우리는 물론이고 다음 세대까지 생명 연장의 꿈을 이 뤄낼 수 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우리가 내 삶의 안전 또한 예측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너무 거창하고 어렵고 막막한 가? 아니면 나의 당신이 무엇인지 벌써 감이 오는가?

나의 당신, 바로 태양계 3번째이자 블루마블인 ‘지구’다. 어떤 학자는 지구가 아파하는 지금이 ‘종말론적 위기의 시대’ 라고 하고, 또 다른 학자는 지구의 골든타임이 7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고 한다. 글로벌 보일링(global boiling, 지구 열대화)로 인한 기후 위기는 사계를 알 수 없을 정도의 희귀 한 자연현상을 보여준다. 높아지는 해수면과 슈퍼파워급 폭 풍 외에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각종 재난을 위협적으로 보 여준다. 이제는 계절에 대한 기대보다 낯설게 견디어야 하는 그 무엇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가 커진 때이다. 가장 가깝게는 11월 초 절기상 입동이 8일이었지만, 일부 도시에서 개나리가 폈다. 폭우의 여름을 건넜지만, 이제 어떤 겨울을 상상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최근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결국 철회하는 등 일부 역행 하는 정치 논리를 비롯해 산업계에서 이산화탄소 긍정적 영 향을 주장하는 낙관론 등이 우리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하는 것 같지만, 사용자 선택 범위가 남아있고 개개인부터 시작한 집단지성의 현명한 선택에 무게를 싣는다면 아직 희망은 있 다. 결국 개인 취향은 선택일 수 있으나, 지구 온도를 더 높 이지 않는 것이 인류 생존 문제임에 경각심을 갖는다면 문제 해결의 주체자로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미래를 재건할 수 있다.

실존적 위협이 되는 기후 변화를 줄이고 지구의 온도를 맞 추는 일,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던 환경보호 이론을 오늘부터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 다수와 특 정 논리에 호도되기보다 스스로 관련 자료를 찾고 실행하는 습관 등이 관건. 예컨대 에코백 사용, 스마트폰을 자주 변경 하는 것, 해양에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 여행을 위한 비행기 탑승 등 우리 일상 속 선택 행위가 지구를 어떻게 망가뜨리 는지 점검해야 한다. 의식주 전반에서 내 결정과 선택을 다시 살펴야 한다. 지구에 해롭지 않은 선택을 해야만 우리는 지구 에 공존할 수 있다. 지금 사계의 풍광이 과거 이상향으로 멈 추지 않게, 평화롭게 보이는 사계절이 당연하지 않음을, 우리 존재 방식의 척도를 꼼꼼히 되짚어보며, 당신과 나의 온도를 맞춰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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