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 1656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는 필립페 4세의 제안으로 <라스 메니나스>(1656)를 제작했다. 에스파냐어 ‘라스 메니나스'는 la menina의 여성형의 복수형으로, 메니나의 뜻은 ‘귀족 집안의 젊은 아가씨가 왕가에 봉사’하는 것을 지칭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공주의 오른쪽에서 인사하는 젊은 아가씨와 왼쪽에 무릎을 꿇고 금쟁반에 붉은 음료수를 공주에게 건네는 젊은 아가씨, 즉 메니나스, ‘궁녀들'이 작품의 제목이다. 작품은 역사적으로 지난 1666년 “가족화" 또는 "필립페 4세의 가족화"라고 부른 기록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1843년 프라도미술관 카탈로그에서 이 그림을 ‘라스 메니나스’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면서 현재까지 ‘라스 메니나스’로 불리게 됐다.

잘 알려진 그림의 배경은 화가 벨라스케스가 펠리페 4세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사이, 화가는 모델이 된 왕과 왕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들의 5살 된 딸 마르가리타 공주를 벨라스케스의 작업실로 초청했고 지금 막 공주가 작업실에 도착한 장면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중앙에 마르가리타 공주가 서 있고, 공주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메니나스가 보인다. 오른쪽 메니나스 옆에는 난장이와 광대가 보이는데, 광대는 장난삼아 발로 개를 누르고 있다. 또 오른쪽 메니나스 뒤로 호위병과 공주를 돌보는 나이 든 시녀가 그려져 있다. 한편 그림의 왼쪽에는 이젤에 올려진 커다란 캔버스의 뒷면이 보이고 몇 걸음 떨어져 왼손에는 팔레트와 오른손에는 붓을 들고 있는 화
가 벨라스케스가 서 있다. 그는 귀족처럼 품위 있는 모양새로 궁정화가를 상징하는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망토를 입고 있으며 그는 지금 이 상황을 관조하듯 조금 떨어져서 있다. 또 화면의 맨 뒤에서 문을 열며 이 공간의 유일한 밝은 빛을 보여주는 미스테리한 남자는 시종장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로서, 그는 빛과 바로 옆 검은 커튼의 극적 대비를 통해 우리를 마치 미지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듯 서 있다. 이 시종장은 궁중에서 일하던 벨라스케스의 친척이라고 추측되며, 그의 추천으로 벨라스케스가 필립페 4세 때 궁정화가가 됐다고 한다.

한편 시종장이 문을 연 벽면에는 대형 그림들과 함께, 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초상화가 아니다. 그림 속 진실은 왕과 왕비가 그림 밖의 관람자 위치에 서서 벽면에 걸린 검은 액자의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이다. 화가는 기발한 눈속임으로 우리에게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도 벽면의 다른 그림들처럼 왕과 왕비의 초상화라고 착각하게 했다. 이처럼 거울은 그림에서 중요한 속임수다. 그리고 이 거울의 존재가 이 그림의 핵심적인 수수께끼를 푸는 결정적 단서다.

작품에서 인물들의 배치와 그림의 설정이 마치 연극 무대와 같다. 이 그림을 연극 무대라고 가정하고 그림을 보면, 우리는 화가인 벨라스케스의 눈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왕과 왕비는 그림 밖에서 관객의 위치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벨라스케스가 왕과 왕비를 거울 속에 비친 모습으로 그려 넣으면서 작품 속에 존재하게 했다. 관객은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모델, 즉 왕과 왕비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그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 맞은 편에 걸린 거울 속의 왕과 왕비를 봐야 한다. 그리고 거울 속의 왕과 왕비의 눈이 마르가리타 공주를 향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또 거울 옆에 문을 열고 있는 시종장으로 인해 문을 통한 하나의 빛이 존재하는데, 이 빛은 신기하게도 실내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로 문이 열리는 이곳은 화면 가운데서 원근법 소실점이 생기는 곳으로, 수수께끼였던 왕과 왕비의 위치를 우리에게 파악하게 했다.

김미선 | 예대 강의전담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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