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찾아 떠나는 원정진료, 의료인력 충원

전북 5만 환자 매년 서울로, 2013년보다 49%↑
국민건강보험 적용 여부로 의사 소득 제각각
법적 부담 완화, 필수의료 수가 현실화 돼야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모습이다.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모습이다.
▲병원에서 대기중인 환자들의 모습이다.
▲병원에서 대기중인 환자들의 모습이다.

오픈런, 명품관 같은 곳에서 판매하는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이 영업을 시작(Open)하는 동시에 달려가(Run)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오픈런 현상은 팝업스토어, 명품 판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요즘에는 아기띠를 둘러맨 엄마, 아빠들 사이에서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과의 공백이 가시화되며 수도권과 지역 간의 의료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의료진과 의료 서비스 찾아 삼만리
전주에 사는 ㄱ씨는 6개월마다 KTX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향한다. ㄱ씨는 얼굴에 선천성 기형이 발생한 순열 및 구개열 질환을 앓고 있다. 이는 임신 중에 구순(입술) 및 구개(입천장)가 정상적으로 융합되지 못하면서 조직 결손이 일어나는 질환을 말한다. 그는 “매번 2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가지만,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건 겨우 5~10분 남짓”이라 털어놨다. 홍경표(임실군·65세) 씨도 “임실 같은 경우에는 의사 충원이 잘 안돼 의사가 항상 부족한 편인 것 같다”며 “결국엔 전주에 있는 대형병원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지난해 전북도민 5만여 명이 지방에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원정진료’를 찾아 나섰다. ‘빅5병원’에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이 있다. 김원이(더불어민주당·목포)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103만 4000여 명의 환자가 빅5병원에서 진료받았다. 이 중 전북지역에서는 5만 2429명의 환자가 빅5병원으로 향했는데 이는 지난 2013년보다 49.1%나 증가한 수치다.

응급실 뺑뺑이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에서 10대 여학생이 응급실 네 곳을 전전하다 목숨을 잃었다. 이 환자는 건물에서 추락한 중증 환자로 구급차로 2시간을 헤맸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끝내 치료받지 못했다.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원정진료, 응급실 뺑뺑이 등의 원인을 의료인력 부족에서 찾고 있다. 의대 졸업생 중 대다수는 수도권이나 ‘피안성’이라 불리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의 인기과를 희망하기에 지역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의 필수의료과는 인력 부족 상황을 겪고 있다. 지난 2017년 기준 전체 전공의 충원율이 96%를 기록할 때 흉부외과는 54%에 그쳤고, 지난 2020년에도 외과와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63~89%로 미달이었다.

▲지속해서 제기된 의료인력 부족, 원인은?
필수의료 인력 부족의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낮게 책정된 ‘수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로는 지난 2020년 기준 의원급 의사 연봉은 소아청소년과가 약 1억875만원으로 가장 낮다. 반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의 연봉은 각각 약 3억263만원, 약 4억5800만원, 약 2억 3210만원이었다.

소득이 제각각인 이유는 국민건강보험 적용 여부 때문이다. 건강보험 적용 질환은 급여 대상으로 분류돼 환자의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준다. 대신 병·의원은 국민건강심사평가원의 심사를 거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정해놓은 만큼의 수가를 받는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질환은 비급여로 분류돼 부르는 게 값이다. 필수진료과목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로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위험이 크므로 거의 다 급여 대상이다. 즉 의료 복지가 선진화될수록 필수진료과목 전문의는 소득이 줄어드는 모순이 생긴다.

두 번째로는 의료사고에 관한 법정 분쟁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는 그에 관한 법적 책임을 의사 개인에게 묻고 있다. 지난 2017년 이대 목동 병원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균 감염으로 숨졌다. 이에 의료진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3명이 구속되며 의대생들이 소아청소년과를 지망하지 않는 계기로 작용했다. 필수의료과는 과 특성상 의료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 법적 다툼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의사들에 대한 법적 보호 조치가 부재한 실정이다.

▲의료체계 붕괴 막기 위해 환경 개선돼야
현재 우리나라는 진료비 동결 장기화와 열악한 의료 환경 그리고 저출산 문제가 지속되면서 소아청소년과 의료체계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이에 김만기 전라북도의회 부의장은 ‘소아청소년과 의료 개선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 그는 “아이가 아플 때 언제든 진료받을 수 있는 소아청소년 의료 전담 기관 확대 및 원활한 운영 지원을 위함”이라 배경을 설명했다. 입법 절차에 따라오는 오는 12월 8일 때쯤 공포 후 시행될 예정이다. 김만기 부의장은 전북은 소아의료 인프라가 수도권보다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경증, 중등증, 응급 등 전북도는 관련 시설을 확충해 나갈 계획”이라 말했다. 또한 응급의료기관의 인건비 지원 차원에서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에게 월 300만원씩 지원도 함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도 필수의료 붕괴 현상을 막기 위해 지역거점 대학병원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늘리는 의대 증원을 추진키로 했다. 의사의 수를 늘려 필수 의료 분야 유입을 유도하고 거점기관을 필수 의료 중추로 삼아 지역 병·의원과 협력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감기 환자를 보는 의사와 중증 환자를 보는 의사의 수가는 반드시 차이가 나야한다”며 수가 차등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어 의료사고에 대해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분쟁조정 위원회를 원활히 작동해 수술을 기피하는 일이 없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둬야한다고 덧붙였다.

김재연 전라북도의사회 부회장도 “의대 정원 증원보다는 필수의료 환경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를 현실화하고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증가한 의사 수만큼 의료행위로 인한 국민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필수의료 종사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의사 증원보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현재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정부와 의사협회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필수의료 과목 의사 수가 늘어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의진 기자 pjeen1009@jbnu.ac.kr
이다현 기자 dhlee23@jbnu.ac.kr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