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소형서점 입고가 차이, 법 제정으로 보완해야

도서정가제, 가격 거품 해소 위해 도입 및 개정
“도서 생태계 지키는 보루, 폐지 아닌 보완 필요”
전주시, 책쿵20으로 도서 구매 가격 부담 완화

▲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학생의 손이다.
▲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학생의 손이다.

“너 쿠키 구웠어?” ‘쿠키’는 웹툰을 볼 때 사용하는 전자화폐다. 독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얻은 무료 또는 유로 쿠키를 통해 웹툰을 볼 수 있다. 웹툰 산업계는 무료보기, 정액제, 쿠폰제도 등 콘텐츠 특성에 맞는 다양한 가격정책을 추진하길 원하지만 웹툰 역시 도서정가제 대상이 되기에 어떤 플랫폼이든 최대 10% 이상 할인할 수 없다. 이에 웹툰· 웹소설을 도서정가제에서 예외로 두는 방안으로 고려하자며 이슈가 됐다. 지난 2003년에 한시법으로 시작해 도입 22년이 지났지만 도서정가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여는말>

▲도서정가제 도입 배경은?
도서정가제란 출판사가 판매하는 모든 간행물에 정가를 표시하고, 판매자는 출판사가 표시한 정가대로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도서정가제 도입 계기는 3가지다. 첫 번째는 가격 거품 해소를 위해서다. 단기적으로는 할인율을 제약해 가격이 높아지지만 장기적으로는 높은 할인율로 인한 정가 상승을 방지하므로 도서의 가격이 합리적으로 책정된다. 두 번째는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전에는 할인율이 높은 도서가 베스트셀러에 들어가 대형 출판사들이 그 작품만 찍어 냈기 때문에 신인 작가들은 작품 활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도서정가제를 통해 도서의 창작 환경, 출판의 다양성을 보존하겠다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서점과 중·소규모의 서점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정가가 1만원인 책을 10% 할인한다고 가정한다면, 대형서점 수익은 3000원이지만 동네 서점 수익은 1500원이다. 동네서점은 ‘출판사-도매상-소형서점’ 구조지만 대형서점은 도매상을 거치지 않아 가격 측면에서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서정가제로 할인율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대형서점과 대형 출판사들이 수익을 다 가져가 소형서점이 불리한 위치가 된다. 

▲22년 동안 두 번 모습을 바꾼 ‘도서정가제’
지난 2003년 일시적으로 도입한 도서정가제는 10년간 유지되다가 2014년에 개정됐다. 두 가지 측면에서 도서정가제를 개정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먼저 현행 제도의 할인율이 다른 선진국보다 과도하게 높고 적용 예외 사항이 많아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백원근 책과 사회 연구소 대표는 “할인 과다 경쟁으로 구간 도서의 무제한 할인이 발생해 대다수의 지역 서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할인율을 높일 수 있는 대형 출판·서점들만 생존한 것이다.

두 번째로 실용도서, 초등 학습 참고서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는 도서정가제 적용 범위에서 실용도서만 제외했다. 하지만 비실용도서인 경제·경영서 등도 실용도서로 등록해 저가로 할인 판매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가격이 안정적이던 초등 참고서는 지난 2007년 물가지수와 함께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중·고등 참고서의 가격을 뛰어넘었고, 과다하게 할인하다 보니 가격 신뢰도가 하락하고 유통 질서가 문란해졌다. 이에 지난 2014년 모든 도서로 대상 범위 확대, 가격할인과 간접할인을 포함한 할인율 15%로 확대, 적용 예외 기관 축소로 도서정가제가 변경됐다.

▲도서정가제 ‘폐지’가 ‘정답’인가
지난해 7월 20일 헌법재판소는 책값 할인 폭을 제한하는 도서정가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작가 A씨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 4항 등이 직업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지난 2020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재판관 8인이 A씨가 낸 위헌 확인 사건에 대해 만장일치로 기각을 결정한 것이다. 이는 도서정가제를 정한 출판법 규정이 간행물 판매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에 관해 판단한 첫 사례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도서정가제 유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20년 10월에는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박대헌(고고문화인류·23) 씨 역시 “도서정가제로 책 가격이 비싸진 것 같아서 구매를 망설이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값을 살펴 보면 그전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상승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 통계에 따르면 도서정가제를 개정하고 시행한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도서 정가 증가율은 2.51%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 5년간 증가율이었던 5.08%의 절반 수준이다. 책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도서 구입량은 줄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책값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난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책의 해 조직 위원회에서 조사한 ‘책을 읽지 않는 이유’에서 ‘시간이 없어서(19.4%)’가 1등을 차지했고 단 1.4%만이 ‘책 비용이 부담돼서’를 선택했다. 도서정가제 폐지에 대해 백원근 대표는 “도서 정가제가 폐지된다면 할인 경쟁으로 소규모 서점이 사라져 소형 출판사가 줄고, 신규 저자가 줄어 독자가 다양한 책을 입수하기 어려워진다”며 “도서정가제는 출판 생태계와 독서 생태계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하므로 폐지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주책쿵20, 도서정가제 해결의 마중물 될까
도서정가제는 34개 OECD 국가 중 영미권을 제외한 프랑스, 독일, 일본 등 16개 회원국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지난 1964년 독일에서는 1000여 개 출판사와 서점들이 참여한 공동협약으로 자율적 도서정가제가 시작됐다. 공동협약으로 정가제를 관리할 수 있는 관재인을 두고 운영했지만 이에 참여하지 않은 곳은 영업 자체가 어렵다며 반발했다. 또한 판매자들의 가격담합행위가 자율경쟁법에 위배된다며 EU 역시 공동협약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여론으로 독일은 다른 국가의 도서 정가제 법안을 참고해 지난 2002년 출판물정가법을 제정했다. 출판물정가법에서 눈에 띈 점은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판매하는 가격과 공급률도 제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형서점에 낮은 입고가로 책을 공급하고 소형서점에 높은 입고가로 책을 공급하는 행위를 차단했다.

김정숙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대표는 “독일처럼 대형서점과 소형서점의 입고율이 달라서 발생하는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입고율을 동일하게 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대형서점과 소형서점이 갖는 입고율 차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 제정을 통해 도서정가제를 보완하는 것이다. 지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도서정가제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개선·보완이 62.1%, 유지가 23.0%, 폐지가 15.0%로 폐지보다 개선 및 보완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주시는 도서정가제로 독자들이 느끼는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책쿵20’을 운영 중이다. 전주시는 12곳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린 책 을 반납할 때마다 이용자에게 권당 50포인트 씩 지급하고 있다. 시민들은 참여서점에서 단행본 구입 시 포인트를 사용해 정가의 2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책쿵20 서비스 이용자 96.1%가 제도에 만족하며 앞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전주시의 연평균 도서 구입 권수도 기존 9권에 서 13.5권으로 증가했다. 금액적인 측면에서도 시민들은 책쿵20을 통해 약 6억 5000만원의 도서 구입비용을 할인받았고, 참여서점들 도 약 3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상생 구조를 형성했다.

송주현 기자 202318983@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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