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영 | 조교수(인문대·국어국문)
이만영 | 조교수(인문대·국어국문)

나를 키운 건 8할이 서점이었다. 책을 살 만한 여유가 없던 시절, 도서관에서 대출을 받아 책을 읽어도 되었건만 서점으로 향할 때의 내 발걸음은 늘상 가벼웠다. 홍지서림, 민중서관, 새날서점, 광화문 교보문고, 동방서적. 이곳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원 시절에 이르기까지 내가 애용했던 서점들이다. 이 중 홍지서림과 광화문 교보문고를 제외하고 여타 서점들은 모두 사라졌는데, 사라진 서점 중에서 내가 유독 애착을 가졌던 서점이 있었다. 전북대 구정문 쪽에 있었던 새날서점과 고려대 정경대 후문 쪽에 있었던 동방서적이 바로 그곳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시절에는 『역사의 종언』이나 『문학의 죽음』와 같이 ‘종언’, ‘죽음’ 등의 레테르가 붙은 책들이 유독 많이 출간됐다. 이러한 책들을 읽고 구매했던 곳이 바로 새날서점이었다. 이곳은 인문학과 사회과학 서적이 유독 많았던 데다가 오랜 시간 앉아 책을 읽어도 사장님이 눈치 한 번 주지 않는 평온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 서점에 가서 책을 읽다가 귀가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뜻한 마음으로 새날서점을 찾아갔는데 그 서점은 돌연 사라지고 없었다. 사장님께서 암 판정을 받게 돼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수년 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서점에 대한 집착은 여전했는데, 당시 내가 애용했던 서점은 동방서적이었다. 대학원 석사 시절, 귀가 전에는 동방서적에 틈틈이 들러 책을 읽었다. 내가 워낙 자주 갔던 탓이었는지, 사장님께서는 종종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좋은 책들을 소개해 주시기도 했다. 그러던 2010년 어느 날, 책을 훑어보고 있던 내게 사장님께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하셨다. 서점을 폐업하게 되었다고, 그간 와 줘서 고맙다는 말씀이었다. 그분의 애잔한 눈빛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이렇게 내가 사라진 서점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뭘까. 주지하듯이 서점은 아날로그 감성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나간 문화의 망각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보리스 그로이스의 지적처럼 지나간 문화를 망각하는 데에서 생성되는 ‘새로움’이란 없다. 물론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우리 대학생들에게는 동네 서점 문화가 익숙하진 않겠지만, 현재 ‘뉴트로’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지나간 문화가 가진 가치가 재호명될 때라야 비로소 ‘새로움’이라는 것이 생성될 수 있다는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온라인 서점이 활황인 이 시점에 동네 서점의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퇴행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네 서점이 그 지역의 지식 생태계를 구성했던 ‘풀뿌리 지식 공간’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동네 서점이 온라인 서점과 공존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게 된다면 공공지식을 확산시키는 데 있어서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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